서울고등법원 배석판사 75명이 21일 신영철 대법관의 재판 개입 논란을 논의하기 위한 판사회의를 열었으나, 신 대법관의 거취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아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번 사태의 중대 고비로 여겨졌던 서울고법 배석판사회의에서 신중론이 우세하면서 집단행동 움직임까지 우려됐던 일선 법관들의 판사회의는 일단 소강 국면으로 접어든 양상이다.
서울고법 배석판사회의는 당초 개최 여부가 불투명했다. 20일 개최 여부를 묻는 질문에 전체 105명 중 30명만 동의했기 때문이다. 판사회의가 열리려면 전체 인원 중 절반 이상이 참석해야 한다. 그러나 막상 회의가 시작되자 참석 인원은 절반을 훨씬 넘었다. 한 참석자는 “헌법에 보장된 법관의 지위에 대해 논의하는 것 자체가 부적절해 회의 개최에 동의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소집 정족수인 5분의 1이 넘어 회의 개최가 결정된 이상 참석해야 한다는 원칙론이 우세해 회의에서 분명한 뜻을 밝히기로 했다”고 말했다.
서울고법 배석판사는 105명으로 전국 5개 고등법원 가운데 가장 많고 사법연수원 24∼27기 출신으로 법관 경력 12∼15년차인 중견 판사들이다. 이날 회의에서 이들은 신 대법관이 서울중앙지법원장 시절 판사들에게 e메일을 보내 재판을 재촉하거나 촛불집회 관련 사건을 특정 재판부에 배당한 행위가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했다는 데는 의견을 같이했다. 그러나 법관의 신분이 헌법에 보장된 만큼 법관이 나서 거취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데 상당수가 의견을 같이했다.
한편 대한변호사협회는 박시환 대법관이 최근 법원 내부 상황을 ‘5차 사법파동’이라고 표현한 데 대해 “참으로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법원이 조속히 정상화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전국의 법관이 개별 행동을 중단하고 언행을 조심해 대법원장을 중심으로 일치 단합하라”고 주문했다.
이종식 기자 be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