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날개잘린 ‘평화의 종’, 남북통일 그날에 완성된다

  • 입력 2009년 5월 26일 02시 56분


화천 ‘세계 평화의 종’ 미완성 상태로 오늘 준공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비목(碑木)의 고장 강원 화천군 화천읍 동촌리 평화의 댐 상류 약 100m 지점에 설치된 ‘세계 평화의 종’. 읍내에서 굽이굽이 고갯길을 지나 30여 분 만에 도착한 평화의 종은 을씨년스러울 것이란 예상과 달리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왜 이곳에 이렇게 큰 종을 만들어 놓았는지 의아해하던 관광객들은 안내원의 설명을 듣고서야 궁금증이 풀렸다. 평화의 댐은 1986년 북한의 금강산댐 수공(水攻) 문제가 제기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또한 댐 인근의 파로호는 6·25전쟁 당시 중공군 3개 사단(3만여 명 추정)이 수장된 곳. 화천군은 이 같은 전쟁의 상흔을 다소나마 치유하기 위해 2005년부터 평화의 종 제작에 나섰다.

평화의 종 설치 배경을 이해한 관광객들은 종 상단의 비둘기를 보고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네 마리의 비둘기 중 한 마리의 오른쪽 날개가 잘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의문도 금세 풀렸다. 평화의 종 무게는 37.5t(1만 관). 그러나 정확히 따지면 9999관이다. 모자란 1관(3.75kg)은 비둘기의 날개 무게다. 화천군은 이 날개를 종 아래에 보관하고 통일이 되면 붙여 평화의 종을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화룡점정(畵龍點睛)이 아닌 ‘화룡점익(畵龍點翼)’인 셈이다.

○ 분쟁 지역 30개국의 탄피가 하나로

중요무형문화재 제112호 기능보유자인 원광식 씨가 주조한 평화의 종은 폭 3m, 높이 5m, 무게 37.5t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범종이다. 더욱이 이 종은 종교, 인종, 이념 등으로 갈등을 겪고 있는 팔레스타인, 아프가니스탄 등 세계 분쟁지역 30개국에서 수집한 탄피와 종을 녹여 만들었다.

그러다 보니 탄피 수집 과정에서 에피소드도 생겼다. 2007년 평화의 종 공원 착공식에 참석했던 미국 마커스 브레이브록 목사는 경찰 친구에게서 합법적으로 탄피 5개를 얻어 한국으로의 반입을 시도했다. 미국 공항에서는 탄피 운반의 배경과 목적을 이해시키는 데 별 문제가 없었지만 한국에서는 쉽지 않았다. 한국인으로서는 탄피 5개 운반을 위해 방한한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공항 관리자와 오랜 시간 대화 끝에 이해를 구하고서야 입국할 수 있었다.

○ 노벨평화상 수상자 16명의 평화메시지

평화의 종 옆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티베트 달라이 라마, 러시아 미하일 고르바초프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 16명의 평화메시지가 전시돼 있다. 또 이 가운데 김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등 5명의 손을 본떠 만든 조형물도 전시됐다.

평화의 댐 하류에 위치한 평화의 종 공원은 7000여 m²의 용지에 염원광장, 평화의 정원, 울림의 정원, 생명의 공간 등이 설치돼 있다. 세부 시설로는 강원도와 에티오피아 초등학생들이 만든 평화 그림엽서 288장과 타종 가능한 축소판 평화의 종(15관), 29개국에서 보내 온 종 전시관, 전쟁의 상흔을 보여주는 분단의 벽, 나무로 만들어진 염원의 종 등이 있다.

평화의 종 공원 준공식은 26일 오후 1시 반 평화의 댐 정상 좌안광장에서 열린다. 준공식에는 고르바초프 전 대통령, 김진선 강원지사, 백선엽 대한민국육군협회 회장, 오정석 육군 2군단장, 8개국 주한 대사 등과 국내외 초청 인사 1000여 명, 지역 주민 1000여 명이 참석할 예정이다. 당초 참석 예정이던 한승수 국무총리는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식 준비 때문에 불참한다. 준공식에 앞서 오전 10시 비무장지대(DMZ) 평화생태아카데미에서는 국제평화심포지엄(좌장 유재천 상지대 총장)이 열리며 오후 2시에는 평화의 댐 인근 비목공원에서 호국영령에 대한 추모 및 헌화가 있다.

화천군은 매년 1월 1일 또는 세계 평화의 날인 9월 셋째 토요일에 평화의 종을 타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화천=이인모 기자 im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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