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공해 없는 ‘그린 에너지’
오토바이와 시간-가격 비슷
“돈보다 자전거문화 전파”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돈도 되지 않지만 자전거 문화를 개척한다는 마음뿐입니다.”
14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사거리에서 알록달록한 자전거 옷을 갖춰 입은 변국종 씨(42)를 만났다. 변 씨는 갑자기 입을 벌리며 잇몸을 보여줬다. 몇 해 전 도로에서 자전거를 타다 사고가 나 앞니 두 개를 모두 잃었던 것. 변 씨는 “훈장은 아니지만 자전거를 타다 보면 이렇게 되는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변 씨는 ‘자전거 메신저’ 가운데 한 명이다.
○ 자전거 메신저의 산 역사
자전거 메신저란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고 간단한 서류나 소포를 배달하는 사람을 뜻한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도 ‘Bicycle messenger’란 단어가 ‘자전거를 이용해 운송업을 하는 사람’으로 등록돼 있다. 미국 일본 호주 등에서는 자전거를 이용한 퀵서비스가 보편화된 지 오래다. 20년째 자전거 마니아로 살고 있는 변 씨는 자전거로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이 일을 시작했다. 변 씨는 “‘허파에 바람 들어간다’라는 말이 있는데 나는 자전거를 타며 허파에 바람을 넣을 때 가장 행복하다”라며 “화석 에너지가 아닌 ‘사람 에너지’를 이용하는 무공해 청정 퀵서비스인 셈”이라고 말했다.
변 씨는 한국 자전거 메신저의 산 역사다. 8년 전 오토바이 퀵서비스 회사에 다닐 때부터 자전거 메신저 활동을 시작했다. 사장의 배려로 가능했지만 편견을 이겨내기는 쉽지 않았다. 괜히 헛고생 한다는 소리도 듣고 ‘슬로 서비스’라는 욕도 먹었다. 변 씨는 두 배로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끝내는 오토바이처럼 빠르게 물건을 배달할 수 있었다. 고객들은 변 씨가 자전거를 타고 왔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았다. 시간상 별 차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 녹색 창업, 녹색 일자리
최근 변 씨는 ‘녹색 창업’에 나섰다. 4명의 자전거 마니아와 함께 자전거 퀵서비스 회사를 직접 차렸다. 관공서와 기업체를 돌며 열심히 홍보 중이지만 퀵서비스 업체가 워낙 많아 걱정도 앞선다. 변 씨는 “돈도 벌면 좋겠지만 그보다도 자전거가 ‘녹색 일자리’라는 인식이 퍼져나가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현재 자전거 메신저는 서울에만 10여 명이 있다. 아직 시작 단계라 다른 일도 병행하는 사람이 많다. 이들은 장거리 운송도 할 수 있게 지역별로 네트워크도 구축했다. 예를 들어 세종로에서 경기 용인을 간다면 강남의 메신저가 물건을 이어 받아 두 시간 안에 배달을 끝낸다는 구상이다.
4대문 안이 주무대인 변 씨 역시 광화문에서 동대문까지 30분이면 너끈하다. 가격은 오토바이 퀵서비스와 비슷한 수준이다. 화물 무게는 4kg까지 가능하지만 짐칸을 뒤에 달면 그 이상도 배달한다. 일반 퀵서비스가 2, 3개씩 물건을 받아뒀다 한꺼번에 배달하는 반면 자전거 메신저들은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출발하는 것도 장점이다. 소음과 매연도 물론 없다. 변 씨는 “앞으로 자전거 순환도로망이 구축되면 더욱 안정적인 서비스가 가능할 것”이라며 “자전거 도로가 생겨도 자전거를 타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일단 자전거 문화가 생활의 일부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시 페달을 밟는 변 씨의 허파에는 희망찬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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