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 사정관이 고개 끄덕이게 자기소개서
열려라, 사정관제 좁은문! 네 합격생의 남다른 ‘열쇠’
《대학이 교육과정 전문가인 사정관을 위촉해 학생의 성적뿐만 아니라 소질과 경험, 성장환경, 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신입생을 선발하는 입학사정관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입학사정관제가 치솟는 사교육비를 일정 정도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입학사정관제 예산을 확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들도 입학사정관제를 통한 선발인원을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수험생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학생들이 입학사정관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건국대, 경희대, 성균관대, 이화여대에 합격
한 학생들로부터 입학사정관제의 관문을 뚫은 이야기를 들어봤다.》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아 매진하라
성균관대 사회과학계열에 합격한 박용흘 군(18)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지를 빨리 찾아내 그 분야에 몰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박 군의 제1 관심은 ‘법’이다. 앞으로 인권 변호사가 돼 약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거나 국제 변호사로서 국가 간 혹은 기업 간 분쟁을 멋지게 해결하고 싶은 것이 그의 꿈.
박 군은 고교 1학년 때 교내 법 동아리 ‘마니 풀리테’(이탈리아어로 ‘깨끗한 손’이라는 의미로 1992년부터 이탈리아에서 전개된 부패추방운동)를 결성했다. 법을 좋아하는 친구 5명과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청소년의 법과 생활’이라는 교재로 공부했다. 2학년 때는 법무부 주최 ‘전국고등학생·대학생 모의재판 대회’에 출전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박 군은 “고등학교 기간 동안의 비교과 활동은 ‘법’이라는 키워드를 벗어난 적이 없다”며 “입학사정관제도 등을 노린 의도적인 활동이 아니라 좋아하는 분야를 파고 들다보니 얻게 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비교과 활동에 매진했다고 해서 박 군이 공부에 소홀했던 것은 아니다. 고교 시절 박 군의 대학수학능력 모의고사 성적은 언어 영역 1등급, 외국어 영역 2등급, 사회탐구 전 영역 1등급으로 상위권이었다. 다만 수학 성적이 좋지 않아 수리 영역은 5등급이었다.
건국대 상경대학에 합격한 김은솔 양(19)의 키워드는 경제였다. 김 양은 부산 대덕여고 교내 동아리인 ‘경제탐험대’에서 활동하며 3년 동안 ‘ET(Economic Thinking)’라는 경제월간지를 만들었다. 김 양은 “ET를 발행하며 경제에 대한 지식도 쌓을 수 있었으며, 주식 모의 지원, 영화를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기, 소비자 선호도 조사 등 혼자서는 하기 힘든 다양한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적극적인 동아리 활동을 인정받아 금융감독원과 부산경제교육센터의 지원으로 세관박물관, 한국증권선물거래소, 금융감독원 등을 방문했던 경험도 빼 놓을 수 없다. 김 양은 “다른 학생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것을 경험하면서 좋아하는 분야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됐고 오랫동안 관련 분야에 대한 지식을 축적해 면접에서도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색 경력’만으로는 승부 안 된다
합격생들은 모두 ‘톡톡 튄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색 경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하나같이 “튀는 경력만으로 다 될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에 합격한 전은지 양(19)은 계원예고에서 영화와 영상을 전공하다 동일계열이 아닌 인문계열 언론홍보영상학부에 진학했다. 고교 시절 단편 영화를 제작해 영화제 등에서 수상하기도 했고, 전주 국제 영화제에서는 객원 아티스트로 취재활동을 펼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한다.
그러나 전 양은 “단순히 이색 경력만을 나열하는 식의 자기소개서로는 입학사정관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으며 오히려 대학 진학을 위한 활동 정도로 평가절하되기 쉽다”며 “훌륭한 경험들을 어떻게 포장하고 엮어 낼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 양의 경우 예술고 학생으로서 단순히 영상 기술적인 부분의 잠재력만이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수상 경력과 활동을 책으로 엮어내 좋은 평가를 받았다.
경희대 무역학과에 합격한 조은선 양(20)은 “입학사정관 전형에는 규모가 큰 대회에서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진 학생이 많이 몰리기 마련”이라며 “결국 이 경력이 내가 공부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지 입학사정관을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면접에서 입학사정관이 원하는 답을 내놓지 못하면 아무리 서류전형에서 우수했어도 최종 합격할 수는 없다”며 “특히 경희대 입학사정관 전형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9시간 동안 계속되는데 긴장되는 상황에서도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전달할 수 있었던 것이 합격 비결 같다”고 말했다.
○학생회장 등 리더십 두각
수험생들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성격은 물론 주변 사람들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리더십을 적극적으로 보여주는 것도 좋은 평가를 받는 요소다. 경희대 조은선 양은 서울 숙명여고 재학 시절 학생회장을 지냈다. 마침 조 양이 학생회장을 할때 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아 주도적으로 기념사업을 치러낸 경험이 있다.
조 양은 “행사를 훌륭히 치러내기 위해서는 모든 학생들의 참여가 절실했다”며 “단순히 학생회장이라는 직함만 가지고서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학생들에게 사업을 알리고 설득하고 동참시키는 과정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박용흘 군 역시 하나의 동아리를 직접 만들어 친구와 후배들을 이끄는 모습을 보였다. 이화여대 전은지 양도 단편 영화 감독으로서 직접 관련된 6, 7명의 스태프와 조화를 이루며 영화를 찍었고 간접적으로 연관된 10여 명과도 소통을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펼쳤던 점이 입학사정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분석된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