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대덕밸리 이야기<2>KAIST초빙특훈교수 류근철 박사

  • 입력 2009년 5월 28일 06시 22분


KAIST에 578억 희사한 기부왕

식사는 죽 한 그릇-계란 프라이

대전 유성구 구성동 KAIST 학생식당인 ‘석학의 집’에는 지난해 10월부터 아침식사 단골손님이 한 명 늘었다. 허름한 잠바차림으로 찾아오는 이 노인의 식사 메뉴는 800원짜리 죽 한 그릇과 300원짜리 계란 프라이 하나.

지난해 8월 KAIST에 578억 원을 기부한 류근철 박사(83·KAIST 초빙특훈교수 겸 모스크바국립공대 종신교수·한의학 박사)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의 숙소는 식당에서 300m가량 떨어진, 21m² 남짓한 교내 게스트하우스. 자신의 연구실이 있는 인문사회과학부 건물까지 출근은 자전거로 한다. 학교 측이 교내에서 사용하는 전기자동차를 내주겠다고 했지만 “자전거가 건강에 좋다”며 한사코 사양했다. 류 박사는 ‘대덕밸리 사람’이 됐다. 서울의 집으로 가는 주말을 제외하고 평일은 KAIST에서 기거하며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꼬박 ‘정상 근무’를 한다.

그의 연구실은 학생 헬스클리닉을 겸하고 있다. 하루 60∼70명의 학생들이 수시로 찾아와 이곳에 설치된 8대의 ‘헬스부스터’에서 공부로 지친 심신을 푼다. 헬스부스터는 허리와 목 디스크, 관절염 등을 치료하는 의료기기로 대기권을 드나들며 신체적인 충격을 많이 받는 우주비행사 등을 위해 류 박사가 직접 고안하고 제작했다. 그는 “10월 ‘2009 대전 국제우주대회(IAC)’에 참가하는 우주인 수백 명이 이곳의 헬스부스터 치료를 받을 예정”이라며 “대덕특구의 과학자들도 치료를 원하면 언제든지 대환영”이라고 말했다.

교내 게스트하우스가 숙소 학생들과 수시로 ‘노소동락’

재산 기부후 가족과 소원 “언젠가 이해할 날 오겠죠”

류 박사의 연구실 옆방인 ‘유석 소장품 전시실’에는 그가 평생 모아온 소장품들이 가득하다. 중국 건륭황제 옥새, 중국 황실의 공주(公主)용 테이블, 중국 황태자가 쓰던 벼루, 100년 전 쓰던 재봉틀 등 5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류 박사는 “KAIST 학생들이 이공계 공부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기부금과는 별도로 이들 소장품을 학교에 기부했다.

그는 앞으로 KAIST세계화추진위원장을 맡아 각계에서 1000억 원가량의 기부를 이끌어 내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또 한방과 양방을 혼합한 제2, 제3의 항생물질을 개발해 의학에도 기여하고 KAIST의 수입원으로 삼기로 했다.

1926년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그는 1976년 경희대에서 대한민국 1호 한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남표 총장은 이런 류 박사를 극진히 예우한다. 류 박사가 예고 없이 찾아오더라도 중요한 회의조차 중단하고 우선적으로 맞는다.

알려진 것처럼 류 박사는 재산 기부 이후 가족과의 관계가 다소 소원해졌다. 기부와 관련된 행사에 가족과 같이 참석한 적이 없는 그는 4월 13일 자신의 연구실과 헬스클리닉 등을 개원할 때 “아내가 참석할지 모른다”며 무척이나 기대감에 부풀었다. 결국 부인은 참석하지 않았지만 류 박사는 비교적 담담하게 상황을 해석했다.

“가족의 심정을 이해해요. 언젠가 나를 이해할 날도 올 거고요. 나는 지금의 생활에 만족해요. 이 나이에 재산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고작 친구들과 골프나 쳤을 텐데, 일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해나가잖아요? 기부하고 났더니 아픈 데도 모두 사라지고 잠도 잘 오는 걸요.”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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