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게이트’ 수사 또다시 벽에…

  • 입력 2009년 6월 3일 02시 57분


“죄송합니다” 2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가운데)이 오후 11시 40분경 귀가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천 회장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경황이 없어서 뭐라 말 못하겠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죄송합니다” 2일 구속영장이 기각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가운데)이 오후 11시 40분경 귀가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찰청 청사를 나서고 있다. 천 회장은 심경을 묻는 취재진에게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 경황이 없어서 뭐라 말 못하겠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 ‘알선수재 혐의’ 천신일 회장 영장 기각

“형평성 논란 피하려고 무리하게 수사” 지적
‘조세포탈’ 별건 수사도 포함 역효과 가능성

법원이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2일 기각하면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큰 충격에 빠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따른 책임론 때문에 곤혹스러운 처지에 빠져 있는 검찰이 가까스로 재개한 ‘박연차 게이트’ 수사가 또다시 벽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검찰은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엄정한 수사로 노 전 대통령 서거로 불거진 일각의 비판 여론을 돌파하려 했으나 오히려 수사의 신뢰성마저 흔들리게 됐다. 천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의 후원자로 현 정권의 유력자로 알려져 있다.

서울중앙지법 김형두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10시 반경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그 사유를 상세하게 밝혔다. 우선 세무조사 무마 청탁 부분에 대해선 지난해 8월 천 회장이 박 전 회장에게서 부탁을 받고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에게 청탁을 한 사실은 소명되지만 그 대가 부분이 소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당시 베이징 올림픽 참관 때 레슬링협회장인 천 회장이 레슬링협회 부회장인 박 전 회장에게서 중국돈 15만 위안(약 2500만 원)을 받은 것은 청탁 대가라기보다는 선수단 격려금 성격이 짙다고 봤다. 또 박 전 회장이 투자금 6억2300만 원을 돌려받지 않았다는 부분 역시 대가성에 관한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85억여 원의 증여세 포탈 혐의에 대해서도 소명이 부족하다고 판단했고 2003∼2006년 계열사를 13개로 늘리는 과정에서 주가조작 등으로 증권거래법 위반을 했다는 부분에 대해선 정상 참작 사유가 있고 비난 가능성도 높지 않다고 밝혔다.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고 고령인 점도 영장 기각 사유에 포함됐다.

천 회장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데 대해 검찰 안팎에선 “수사팀이 ‘형평성 논란’을 피하기 위해 천 회장에 대해 무리한 수사를 벌였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수사팀이 노 전 대통령을 강도 높게 조사하면서 그 후에 불거질 형평성 논란과 야당에서 특별검사 도입을 제기할 것을 우려해 천 회장에 대해 무리한 수사를 벌인 게 아니냐는 얘기다.

또 검찰이 사실상 ‘별건 수사’를 한 것이 법원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검찰은 세무조사 무마 로비 의혹 외에 천 회장의 조세포탈 혐의까지 구속영장에 포함시켰으나 이것이 오히려 법원에서 역효과를 불러일으켰을 수 있다. 검찰은 천 회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검토한 뒤 재청구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앞서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천 회장에 대한 구속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은 이날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5시 반까지 무려 6시간 동안(휴정시간 제외) 진행돼 영장 기각을 예고했다. 이날 심문에서 천 회장 측은 변호인 4명이 참석해 혐의를 조목조목 반박했다. 또 그동안 세 차례에 걸친 검찰의 소환 조사에 성실히 응했고 고혈압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점을 들어 불구속 수사를 받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천 회장은 심문이 끝난 뒤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천 회장 측의 반박이 이어지면서 심문이 길어지자 김 부장판사는 오후 1시 반부터 1시간 동안 휴정했으며 천 회장은 피의자 대기실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최우열 기자 dnsp@donga.com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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