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에서 화학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안형웅 씨(36)는 3주 후 한국을 떠난다. 안 씨는 국내에서 석사, 박사를 마친 ‘토종박사’지만 최근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로 임용됐다.
그는 국내 초임교수보다 1.5배 높은 연봉에 이주비 5000파운드(약 1000만 원), 5년간 20만 파운드(약 40억 원) 규모의 연구사업 참여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고 9월부터 강의를 시작한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안 씨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교수로 임용된 것은 탁월한 연구 성과 때문이다. 안 씨는 공기 중에 섞여 있는 이산화탄소와 산소, 질소 등을 분리하는 ‘이산화탄소 포집저장기술’ 연구를 인정받았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포집저장기술은 기후변화협약 등 국제적 환경규제로 선진국들의 관심이 높은 분야다.
국내에서 석·박사를 마친 이른바 토종박사들이 외국 유명대학 교수로 임용되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토종박사는 유학파에 밀려 국내대학 교수로 임용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고학력 때문에 일반 취업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토종박사들이 한계를 뛰어넘어 외국대학에 자리를 잡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병희 씨(33)도 최근 중국 광둥(廣東) 성 주하이(珠海) 시에 위치한 유나이티드인터내셔널 칼리지의 회계학 전공 교수로 임용됐다. 이 씨는 서울대 경영대에서 석·박사를 마친 토종박사. KAIST 경영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토종박사 강병욱 씨(28)도 9월부터 홍콩 이공대에서 국제금융 등 재무 분야 교수로 강의를 시작한다.
서울대, 포스텍, KAIST 등 국내 대학의 토종박사들은 꾸준히 외국대학 교수 임용의 높은 벽을 뛰어넘고 있다. 그동안 포스텍과 KAIST는 각각 34명, 40여 명의 토종박사가 외국대학교수로 임용됐다. 서울대 경영대의 경우 4년 연속으로 대학 내 박사들이 외국대학에 교수로 채용됐다. 학계에서는 토종박사의 해외 진출이 늘어나는 이유로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게재된 국내 학자들의 논문 건수 증가와 학연, 지연보다는 능력을 보는 외국 대학의 특성을 꼽고 있다. 해외에 진출한 토종박사들은 해외대학 교수가 되기 위한 ‘핵심역량’으로 △논문의 수가 아닌 질로 승부 △해외에서 열리는 전공 관련 학회 활용 △영어공포 극복 △스스로 한계를 긋지 않기 등을 제시했다.
안형웅 씨는 “실력으로 경쟁해 해외 유수대학에 임용되는 것이 어려운 것만은 아닌데 도전을 하지 않기 때문에 진출한 사람이 많지 않다”며 “국내 교수 임용에서는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건수를 중시하는데 외국대학은 논문 수보다는 질을 중시한다”고 말했다.
토종박사 출신으로 미국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기계항공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박재완 교수(35)는 “전공지식은 책으로 출판되고 나면 1년 전 이야기일 경우도 있지만 학회에서 발표되는 내용은 훨씬 빠르다”며 “참가비용이 많이 든다면 홈페이지 등 온라인을 통해서라도 전공 관련 학회, 저널 등을 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희 씨는 “국내박사에다 어학연수, 외국생활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회의적으로 생각했다”며 “하지만 사용하는 언어만 다를 뿐 내용적인 측면에서는 열심히 한다면 뒤질 것이 전혀 없다고 생각했다”며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