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째 ‘월화수목금금금’ 생활… “미래 경제는 수소가 지배”
2일 오후 11시 대전 유성구 과학로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본관 뒤편에 있는 연구동. 주룩주룩 내리는 빗줄기가 연구실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에 유난히도 빛나 보였다. 2층 물성과학연구실에서 만난 김해진 박사(45·물성과학연구부장)는 밖에 비가 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삽니다.”
그는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공해 배출 없이 공기 속의 수소만으로 승용차가 시속 150km로 달릴 미래를 생각하면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김 박사가 몸담고 있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원장 박준택)은 기초과학과 관련한 국내 대학 및 연구기관 등에 연구 장비를 지원하고 공동연구도 수행하는 국책 연구기관. 김 박사는 미래 동력으로 각광받는 나노(10억분의 1 단위) 분야의 국내 핵심적 존재다.
그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것은 2003년 7월 정부가 선정한 ‘21세기 국가 프런티어 연구개발 사업’. 이 중 ‘고효율 수소 에너지 제조·저장·이용 기술개발사업단’(단장 김종원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수소에너지사업단장)에 소속돼 6년째 연구를 해오고 있다. 나노 재료를 이용해 수소를 될수록 작은 탱크에 더 많이 저장해 자동차나 우주선의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 2013년까지 진행되는 이 연구는 매년 100억 원의 연구비가 투입되는 대형 프로젝트로 그는 지금까지 6년 동안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을 하고 있다.
그는 “수소 에너지는 1차 석유위기 이후 1973년부터 각국이 관심을 가져왔으며 최근 고유가와 지구 온난화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더욱 각광받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누구보다 앞서 있다”고 말했다. 석박사급 22명으로 구성된 팀을 이끄는 그는 “꿈에도 공해 없이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자주 나타난다”고 말했다.
충남 논산 출신인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다. ‘수소폭탄만 있으면 걱정 없다’는 초등학교 때 과학 선생님의 말을 듣고 순진하게도 수소폭탄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중고교 때 유난히 물리학 점수만 좋았단다. 고려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고체물리학으로 석박사 과정을 마친 그는 지도교수인 조성호 박사(고려대 명예교수·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명예연구원)의 추천으로 표준과학연구원에 몸담게 됐다.
그는 특히 1997년부터 14개월 동안 슬로베니아의 요제프스테판 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지내면서 77세에 논문 1000여 편을 발표하고 저명 국제학술지인 네이처, 사이언스 등에도 논문 7편을 발표한 로베르트 블링츠 교수의 연구 활동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에게 자극받은 김 박사는 연구에만 몰두해 45세의 젊은 나이에 국내외 63편의 논문과 5권의 저서, 20여 건의 국내외 특허를 얻는 성과를 거뒀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국제협력연구 과제(TASK 22)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나노 재료의 물리화학적 특성을 실시간 측정할 수 있는 7억 원 상당의 고체 핵자기공명분광기(NMR)에 특수 제작한 기기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는 “청정에너지와 친환경을 추구하는 미래는 ‘수소 경제’가 지배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새벽이 다 돼서야 인터뷰를 마친 그는 “연구실에서 밤을 지새울 때면 아내와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나지만 연구 결과가 조금씩 가시화될 때엔 잠시나마 잊기도 한다”며 웃었다.
등 뒤로 비친 김 박사의 연구실 불빛이 수소 경제가 지배할 미래를 말하듯 밤길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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