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하서선생 탄생 500돌 맞아 기념행사 다채
‘장성 아카데미’도 매주 성황… 지역 경쟁력 키워
3일 오전 전남 장성군 황룡면 필암서원 선비학당. 60, 70대 주민 10여 명이 ‘소학(小學)’을 옆구리에 끼고 서원 내 청절당으로 들어섰다. 이들은 유건(儒巾)을 쓰고 푸른 도포를 입은 훈장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선비학당 훈장은 30년 넘게 필암서원에서 한학을 가르치고 있는 박래호 씨(67·필암서원 집강).
훈장이 예기(禮記)의 혼례편에 나오는 ‘男子親迎(남자친영) 男先於女(남선어녀) 剛柔之義也(강유지의야)’ 구절을 칠판에 적고 뜻을 물었다. 고재일 씨(67·황룡면)가 일어나 예를 갖춘 뒤 “남자가 몸소 여자에게 혼인을 요청한 것은 남자는 강하고 여자는 유순하기 때문이다”고 대답했다. 예절을 익히고 삶의 지혜를 일깨워주는 선비학당은 문향(文鄕)인 장성의 상징이다. 그동안의 수강생이 1000명을 넘는 데다 전국 서원에서 견학이 이어져 장성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 ‘선비의 고장’ 장성
장성군은 조선시대 성리학의 대가인 하서 김인후 선생(1510∼1560)의 학덕을 추모하는 필암서원에 1999년 3월 선비학당을 개설했다. 필암서원은 대원군의 서원 철폐 때도 피해를 보지 않은 곳으로 국가사적 제242호로 지정돼 문화재로 보존되고 있다.
주민들은 매주 월∼수요일 오전에 문을 여는 선비학당에서 무료로 명심보감과 중용, 소학을 익히고 서예를 배우고 있다. 김정연 씨(70·여·장성읍)는 “금언과 명구를 모아 놓은 명심보감이 좋아 6년째 학당을 다니고 있다”며 “기회가 되면 한시 백일장에도 참가하고 유생들과 함께 서예 전시회도 갖고 싶다”고 말했다.
필암서원은 여름방학 때만 되면 한학을 배우려는 대학생들로 북적인다. 선비학당 훈장인 박래호 씨의 해박한 강의가 입소문이 나면서 해마다 전주대 원광대 한문교육과, 상지대 한의학과 학생들이 서원을 찾아 유학을 배우고 있다.
장성군은 하서 선생 탄생 500주년이 되는 내년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기념사업회와 함께 선생의 학문적 업적을 조명하는 학술발표회와 국제심포지엄을 열고 호남 사림 자료전시회를 비롯해 하서 선생 평전 발간, 전국한시백일장, 하서로(河西路) 개통, 하서 선생 생가 복원 등의 사업을 벌일 계획이다.
김달수 울산 김씨 대종회장은 “조선시대 대유학자이자 호남의 큰 선비를 기리기 위해 내년에 가칭 ‘하서문화제’를 열기로 했다”며 “올해 필암서원에 교육관이 들어서고 유물전시관이 증축되면 명실상부한 호남 유림의 메카로 자리 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 사회교육 대표 브랜드 장성아카데미
매주 목요일 전현직 국회의원과 대학총장, 기업인, 언론인 등 국내 최고의 지명도를 가진 인사들을 강사로 초청한다. 시대의 흐름을 읽고 안목을 넓히며 의식을 변화시키는 주제 강의와 토론으로 매회 300명이 넘는 수강생이 참여할 정도로 인기다. 4일 열린 제622회 장성아카데미에는 탤런트 최불암 씨가 나와 ‘연기생활 40년을 통해 본 문화 이야기’를 주제로 강연했다.
교육을 통한 군민과 공무원의 의식변화는 매년 중앙부처 등에서 실시하는 평가에서 그대로 나타났다. 장성군은 지난해 도시대상 활력도시부문 특별상을 비롯해 환경관리 우수자치단체 선정, 맞춤형 방문건강관리사업 최우수군 선정 등 총 14개 분야에서 7억5000여만 원의 상금을 받았다.
이청 장성군수는 “그동안 진행된 아카데미에 참석한 연인원만 군 인구의 10배 정도인 30만 명 가까이 된다”며 “강의를 듣는 공무원들의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주민 의식도 눈에 띄게 바뀌어 지역발전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성=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