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수부 폐지하면 부패공화국 될것”
“정권교체기 검찰총장은 치욕 감내해야 하는 자리…사퇴하는게 마지막 헌신”
“정권 교체기의 검찰총장은 정말 힘든 자리다. 1년 6개월 동안 수도 없이 흔들렸다.”
임채진 검찰총장(57·사법시험 19회)이 5일 27년 동안의 검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검찰을 떠났다. 임 총장은 이날 기자들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사표를 내고 나니까 가슴속에 꽉 막혀 있던 게 탁 터지는 것 같았다”며 재임 기간의 괴로웠던 심경을 내비쳤다.
○ “치욕도 참아야 하는 자리”
임 총장은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뒤 정권이 바뀌어 후임 대통령을 맞이한 검찰총장의 고뇌를 이야기했다. 임 총장은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임기 말인 2007년 11월 총장으로 임명돼 새 정부 출범 당시 불신임 논란을 겪기도 했다. 그는 “진보와 개혁의 중간 지점,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의 중간 지점이라는 희한한 위치에 내가 서 있었다”고 회상했다. 임 총장은 특히 “이쪽에서 흔들고 저쪽에서 흔들고 참 많이 그랬다. 정권 교체기의 검찰총장은 치욕을 감내해야 하는 자리”라고 했다. 치욕의 의미에 대해 그는 “(나를) 밖에서 흔들고 (내가) 마치 자리에 연연해하는 것처럼 비치는 치욕을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신을 펼치기 어려웠던 정치적 상황과 새 정부 인사들의 불신, 그로 인해 빚어진 오해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임 총장은 현 정부 들어 검찰의 독립성이 훼손됐다는 지적에 대해선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항상 한쪽만 좋다고 할 순 없다”며 말을 아꼈다.
임 총장은 또 “사건에 대해서 법무부와 검찰은 항상 긴장관계다. 어떤 바보 같은 사람이 총장으로 와도 ‘검찰을 함부로 건들지 말라’며 발톱을 세우게 된다. 그게 건강한 관계고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내가 잘 맞지 않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하지만 임 총장은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사표를 제출하는 과정에서 반대하는 김 장관과 마찰을 빚은 것으로 알려졌다. 1월 검찰 정기인사를 놓고도 견해차가 있었다고 한다. 임 총장은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도 언급했다. 그는 “(수사지휘권 행사가) 강정구 교수 사건 1건밖에 없었다는 것은 천만의 말씀이다. 늘 그런 건 아니지만 문건으로 나오는 게 있다”며 지난해 광고주 협박 사건을 예로 들었다.
그러나 대검찰청 조은석 대변인은 “일반적 수사 지휘인 ‘인터넷 유해환경 단속에 관한 특별지시’를 내린 것을 말하는 것으로 당시 언론에 보도됐다”고 해명했다.
임 총장은 ‘청와대와 법무부로부터 노 전 대통령에 관한 수사 압박을 받았느냐’는 질문에 “노코멘트”라고 답했다. 이를 두고 민주당 노영민 대변인은 “수사가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는 (임 총장의) 양심선언”이라고 주장하는 등 이상하게 해석되자 대검은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일절 답하지 않겠다는 간담회 전제를 이야기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임 총장은 최근 민주당 등에서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주장하는 것과 관련해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부패 수사 기능을 약화시키면 한국은 부패 공화국이 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그는 “중수부 폐지가 누구 좋으라고 하는 건지 생각해 보라. 수사(박연차 리스트)가 제대로 되길 바라는 사람이 정치권에 있느냐”고 반문했다.
○ “사퇴하는 것이 최선의 선택”
이날 오후 5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대검 청사에서 열린 임 총장의 퇴임식에는 법무부와 검찰 고위 간부, 중견 간부, 검찰 직원 등 500여 명이 참석했다. 모두 어두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임 총장은 퇴임사에서 “법률상 보장된 임기를 포기하고 검찰총장 자리에서 물러나는 결단이 대한민국과 검찰을 위해 마지막으로 헌신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임 총장은 “최근의 사태와 관련해 각계에서 제기된 각종 제언과 비판에 대해 검찰 스스로도 미흡한 점은 없었는지,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잇따른 악재에 움츠러든 검찰
대검과 법무부는 물론이고 일선 검찰청도 주요 수사의 속도를 조절하는 등 신중한 모습이다. MBC ‘PD수첩’이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성을 과장해 왜곡 보도했다는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은 수사 결과 발표문 초안까지 만들었지만 수사 발표를 미루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검의 다른 중요 부서들도 최근 대규모 압수수색이나 주요 피의자 소환 등 외부의 눈길을 끌 만한 움직임을 자제하며 수사 일정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