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父子파일럿 큰 희생 책으로 남깁니다”

  • 입력 2009년 6월 6일 02시 56분


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소설가 차인숙 씨가 고 박명렬 소령과 그의 아들 고 박인철 대위에게 자신의 소설을 바치는 헌정사를 읽고 있다. 차 씨 뒤쪽은 고 박 소령의 동기인 이상길 공군본부 전투발전단장, 오른쪽은 박 소령의 아내인 이준신 씨. 윤상호 기자
5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소설가 차인숙 씨가 고 박명렬 소령과 그의 아들 고 박인철 대위에게 자신의 소설을 바치는 헌정사를 읽고 있다. 차 씨 뒤쪽은 고 박 소령의 동기인 이상길 공군본부 전투발전단장, 오른쪽은 박 소령의 아내인 이준신 씨. 윤상호 기자
오늘 현충일… 서해의 영웅들 잊지 않겠습니다 5일 오후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이 부대 장병들이 출동에 앞서 제2차 연평해전 전적비를 향해 경례하고 있다. 평택=변영욱 기자
오늘 현충일… 서해의 영웅들 잊지 않겠습니다
5일 오후 경기 평택시 해군 제2함대사령부에서 이 부대 장병들이 출동에 앞서 제2차 연평해전 전적비를 향해 경례하고 있다. 평택=변영욱 기자
“고인들은 영공수호 앞장선 공군인의 표상”

‘대 이은 순직’ 기려 차인숙씨 다큐소설 헌정

“비행과 창공을 그토록 사랑했던 부자(父子)는 비록 하늘로 떠났지만 많은 분이 기억해 주시는 한 결코 외롭지 않을 겁니다.”

5일 낮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28묘역. 한편에 나란히 세워진 남편과 아들의 묘비를 어루만지는 이준신 씨(54)의 뺨 위로 눈물이 계속 흘러내렸다. 이 씨의 남편인 고 박명렬 소령(공사 26기)은 공군 F-4E 전투기 조종사로 1984년 한미연합군사연습인 ‘팀스피릿’에 참가해 저고도 사격훈련을 하다 불의의 사고로 순직했다.

세상이 다 끝난 것 같았다. 하지만 이 씨는 당시 네 살과 두 살인 아들과 딸을 끌어안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미용학원 강사를 하며 홀로 자식들을 훌륭히 키웠다. 아이들을 기죽지 않고 당당한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던 남편과의 약속을 지킨 게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운명은 가혹했다. 2007년 7월 아버지의 뒤를 이어 ‘빨간마후라’가 된 아들 박인철 대위(당시 27세·공사 52기)마저 KF-16 전투기를 타고 서해상에서 요격훈련을 하던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당시 박 대위는 사고 한 달여 전 현충일에 가족과 함께 부친의 묘소를 찾아 아버지의 못 다 이룬 창공의 꿈을 이루겠다고 다짐했던 터라 주위의 안타까움은 더했다. 이 씨는 아들이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기를 원했다. 하지만 박 대위는 가족들을 설득해 공군사관학교에 들어가 2006년 조종사가 됐다. 이 씨는 아들의 목에 직접 ‘빨간마후라’를 매줬다.

이날 묘역에선 이 씨 등 유족과 공군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부자 조종사’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두 사람을 추모하기 위해 최근 발간된 다큐 소설 ‘리턴 투 베이스(Return to Base)’의 헌정식을 마련한 것이다. 소설가 차인숙 씨가 두 조종사에게 가장 먼저 책을 전달하고 싶다고 제안했다. 차 씨는 “고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영공 수호에 최선을 다하는 공군인의 표상”이라며 “두 분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는 데 작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들과 동기인 공군 관계자들은 묘소에 헌화와 묵념을 한 뒤 유품들이 전시된 기념관을 방문해 두 사람을 회고했다. 박 소령의 동기인 이상길 공군본부 전투발전단장(소장)은 “박 소령은 생전 비행을 운명이자 강직한 의무로 여겼는데 아들도 이를 물려받은 것 같다”며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전투기 조종사로 순직한 사례는 세계적으로도 아주 드물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사인 ‘화남’과 차 씨는 도서판매 수익금 일부를 모아 아름다운 재단과 함께 기금을 만들어 고인들의 추모사업과 장학사업을 하기로 했다.

윤상호 기자 ysh1005@donga.com

b>▼김윤옥여사, 아들 전사한 105세 할머니 위로 방문▼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는 5일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6·25전쟁에서 전사한 아들을 60년째 기다리고 있는 김언연 할머니(105)를 찾아 위로했다.

김 할머니는 아들 이갑송 씨가 육군 9사단 28연대 소속으로 참전했다가 1950년 12월 전사했으나 혹시 생존해 있을지도 모를 아들이 집을 찾아와야 한다며 60년째 서울 서대문구 만리동 집에서 이사를 하지 않고 있다. 김 여사는 이날 김 할머니가 최근 요양 중인 서울 은평구 응암동 ‘서울 효 요양병원’을 찾아 직접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주면서 “원래 5월에 와서 달아드려야 하는데…”라고 위로했다.

박민혁 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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