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단지로 탈바꿈시키자”
밴드 공연-영화 상영 행사
‘놀래미’ 극단도 단원 모집
“얘, 왜 하필 꽁치라. 오징어도 있고 도루묵도 있는데 말요.” “꽁치가 하늘을 날면 쓰나, 바다에 뛰어들어도 모자랄 판이래요.”
5일 오후 강원 강릉시 주문진읍에 있는 주문진수산시장이 한창 술렁이고 있었다. ‘꽁치극장 개관. 꽁치, 하늘을 날다’라고 큼지막한 글씨가 적힌 포스터를 둘러싸고, 시장의 상인들이 삼삼오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오후 6시쯤 5인조 브라스 밴드가 시장 거리 퍼레이드를 마치고 한 건물의 3층 옥상에 도착했다. 부채 모양으로 200여 석의 계단식 객석을 갖춘 이곳이 바로 포스터에 나온 꽁치극장이고, 이날은 오프닝 데이였다. 꽁치는 주문진의 대표 어종으로 5, 6월이 제철이다. 행사는 고사를 지낸 뒤 ‘미스터 브라스’ 밴드의 공연과 영화 ‘과속스캔들’ 상영으로 오후 10시까지 이어졌다.
주문진수산시장은 생선 젓갈류 건어물상 등 47개 점포가 있는 곳으로 연중무휴로 오전 8시∼오후 9시 문을 연다.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와 강릉시가 주관하는 ‘문전성시 프로젝트’에 주문진수산시장이 선정되면서 이곳에 극장과 갤러리 등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들이 나왔다. 시장을 문화단지로 탈바꿈시켜 문화의 향기와 어시장의 생기가 풍성한 공간으로 만들자는 취지였다. 주문진시장신문은 3호까지 나왔고, 시장 두 곳에 있는 컨테이너 갤러리에는 시장의 생생한 풍경을 사진작가들이 찍은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앞으로는 그림도 이곳에서 선보일 계획이다. 시장 전체 외벽에는 바다 풍경을 그린 그림이 메우고 있다.
이처럼 시장을 문화단지로 바꾸는 일에 상인회 장종태 회장과 건물주인 홍승종 사장을 비롯해 상인들이 적극 나섰다. 폐교를 문화공간으로 개조하는 일을 해 온 감자꽃스튜디오의 이선철 대표와 공연기획자 김의숙 씨 등이 ‘문화 컨설팅’을 맡았다.
장 회장은 “영업이 끝나면 집에 가기 바쁘고, 피로에 찌든 상인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며 “이렇게 밤하늘을 볼 수 있는 탁 트인 극장 공간이 생기니 행복할 따름이고 어르신들을 위한 트로트부터 스트레스받은 상인들을 위한 헤비메탈, 학생들을 위한 힙합 공연까지 무대에 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직 레크리에이션 강사이자 고교 때 댄스클럽 단장을 지냈던 장 회장은 “시간이 지나도 끼가 어디 가겠냐. 무대에 다시 서서 못다 이룬 댄서의 꿈도 이뤄보고 싶다”며 웃었다. 홍 사장은 “주문진에 오면 볼 게 바다밖에 없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는데 이젠 꽁치극장을 주문진의 ‘랜드마크’로 만들어 보겠다”고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문화공간이 생기면서 시장 상인들이 찾은 것은 단순히 극장만이 아니었다. 이들은 일상에 파묻혀 잊고 있었던 나름의 재주를 찾아내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나오는 시장신문에서 시장 사람들을 소개하는 ‘시장인’ 코너는 최명옥 이태수 이영희 씨 등이 명예기자로 활동하면서 기사를 쓰고 있다. 5월호 ‘시장인’의 톱기사(‘10kg 대형 참복어가 잡혔다’)는 최 씨의 특종이다. 시장 외벽을 가득 메운 바다 그림도 백마광고의 최수성 대표(69)가 그렸다. 최 대표는 1970년대 동네 극장이었던 동아, 맘보, 신일극장의 간판 그림을 맡았으나 극장이 문을 닫으면서 붓을 놓았다.
‘돌고래 건어물’의 설은주 사장(46)도 현재 모집 중인 상인들로 구성된 극단에 큰 관심을 보였다.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많았더랬죠. 춤이나 노래는 못하고요. 모노드라마 형식으로 무대에 한번 서보고 싶네요. 가게에 만날 혼자 있으니 혼잣말을 좀 잘해.” 극단 이름은 ‘놀래미’로 지었는데 가입 문의가 이어지고 있다.
주문진=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