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용늘어 인력해고 불가피”
다음 달 1일부터 비정규직법과 관련된 차별시정제도가 종업원 100명 미만 사업장으로 확대된다. 차별시정제도는 비정규직 근로자가 정규직 근로자보다 불합리한 처우를 받았을 때 노동위원회를 통해 시정을 요구하는 절차로 기존에는 100명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됐다. 차별시정제도가 소규모 사업장까지 확대되면 영세 중소기업이 각종 노동 분쟁에 얽힐 가능성이 높아 가뜩이나 어려운 경영여건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종업원 5명 이상 사업장에서의 기간제와 파견 등 비정규직 근로자는 3월 말 기준 255만 명으로 추산된다.
실제로 노동부 용역으로 중앙대 산학협력단이 조사해 8일 발표한 ‘비정규직 활용실태에 따른 기업의 비정규직법 대응 전략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영세 중소기업은 업종별 특성과 기업 규모를 감안하지 않은 비정규직법에 큰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종업원 100명 안팎의 사업장 10여 곳을 대상으로 차별시정제도 등 비정규직법과 관련한 애로사항을 심층 면접한 결과에 기초해 작성됐다.
직원이 80여 명인 정보기술(IT) 컨설팅업체 A사는 비정규직 직원 20여 명을 두고 고심하고 있다. A사는 50여 명의 정규직 사원을 두고 있는데 프로젝트를 딸 때마다 사내에서 구할 수 없는 전문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써 왔다. 하지만 비정규직과 정규직 업무에 큰 차이가 없어 다음 달부터 차별금지조항에 위배되기 때문에 걱정이 태산이다. 프로젝트 수요를 예측하기 힘들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돌리는 것도 어렵다. 이 회사 관계자는 “비정규직 고용 기간 제한이 비정규직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재계약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기업의 경영 재량권을 위축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수도권 주요 관광지 내 통역안내소를 운영하는 B사단법인의 경우 사업 재원이 되는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이 매년 바뀌기 때문에 비정규직 고용이 불가피한데 비정규직 고용 기간을 못 박으면 사업에 걸림돌이 된다고 호소했다. 이 법인의 비정규직은 통역원 40여 명. B법인 관계자는 “비정규직 사용 제한 기간을 연장하는 것도 미봉책”이라며 “외국어가 가능한 인력을 비교적 저렴한 인건비(월 120만 원)에 구하는 것도 쉽지 않은데 비정규직법에 제한을 받지 않기 위해 고용기간마저 한정하면 누가 자긍심을 갖고 관광객을 맞이하겠느냐”고 말했다.
전체 직원 42명 중 비정규직이 4명인 C교육서비스 회사는 비정규직법을 염두에 두고 회사가 직접 고용한 계약직을 외부 고용 파견직으로 전환했다. 그 결과 C사는 외부 용역회사에 일반 관리비를 따로 냄에 따라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돌아가는 실질적인 임금이 낮아졌다.
대형할인점 자회사로 판매 보조사원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하는 E사 관계자는 “비정규직 사용 기간 제한은 현실을 무시한 탁상행정이며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길거리로 내모는 악법”이라고 꼬집었다. 이곳의 한 직원은 “정규직 전환은 기대도 안 한다”며 “차라리 고용 제한 기간을 늘려 달라”고 말했다.
노동부는 “많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달리 인건비 절감보다는 고용 유연성 확보를 위해 비정규직을 쓴다”며 “영세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업종별 특성에 맞게 비정규직법을 더욱 유연하고 신중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유영 기자 ab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