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스피커에 짝퉁시계, 벌통 반입 중국인 적발도
경제난에 고가품 줄었지만 짝퉁 잡화류는 크게 늘어
《11일 오전 10시 인천 중구 항동 인천세관 압수창고. 이철옥 조사관(38)이 창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인천항을 통해 국내에 몰래 들여오다 적발된 각종 압수품이 산더미 같이 쌓여 있었다. 이 조사관은 갑자기 창고 한 귀퉁이로 다가가 권투 샌드백을 뜯었다. 모래 등이 들어 있어야 할 샌드백을 거꾸로 흔들자 그 속에서 외국 유명상표가 부착된 지갑과 속옷, 셔츠 등이 쏟아져 나왔다. 그는 “짝퉁 밀수품을 수없이 단속해 왔지만 샌드백으로 위장해 들여온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라 전국 항만과 공항의 물동량이 줄고, 밀수도 지난해에 비해 감소했으나 그 수법은 날로 지능화하고 있다. 세관이 신속한 통관을 위해 전체 수입물량의 5% 정도만 검사한다는 점을 악용해 밀수범들이 ‘한탕’을 노리고 점점 교묘한 수법을 사용하고 있는 것.》
○ 진화하는 밀수 수법
인천세관은 4월 중국산 발기부전치료제를 대량으로 밀수입한 혐의로 김모 씨(27)를 구속했다. 김 씨는 중국 칭다오(靑島)에서 생산한 정육면체 대리석(1.2m×1.2m×1.2m) 2점을 컨테이너에 실어 수입하는 것으로 신고했다. 그러나 컨테이너 X선 검색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대리석 가운데의 음영이 표면과 다르게 나타났다. 조사관들이 컨테이너를 열고 대리석을 살펴봤다. 외형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대리석 내부에 지름 60cm의 홈이 예리하게 파여 있었고, 이를 열자 발기부전치료제 20만 정이 나왔다.
지난달 13일엔 컴퓨터용 스피커에 이른바 ‘짝퉁’ 시계를 넣어 들여와 인터넷 쇼핑몰에 유통시키려 한 혐의로 이모 씨(45)를 붙잡았다. 최근 국내 컴퓨터업체들이 값이 싼 중국산 부품을 대량으로 수입하고 있어 검색이 까다롭지 않다는 점을 노린 것.
양봉에 필요한 벌도 밀수품으로 등장했다. 세관은 지난달 인천항 제1국제여객터미널에서 중국인 입국자 2명을 검색하면서 살아 있는 벌이 들어 있는 벌통 2개를 적발했다. 이들은 번식력이 강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 벌을 양봉가에 보급하기 위해 반입을 시도한 것으로 세관은 판단하고 있다.
밀수범들은 흔히 한 가지 품목만을 골라 반입을 시도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다양한 물건을 한꺼번에 들여오려는 ‘백화점식’ 밀수도 나타났다. 전모 씨(58) 등 3명은 중국에서 가구를 수입하는 것처럼 속여 장뇌삼과 뱀, 담배, 짝퉁 시계, 발기부전치료제 등 50억 원어치를 밀수하려다 세관에 붙잡혔다.
○ 경제와 밀수는 닮은꼴
올해 1∼4월 인천세관 수입통관 실적은 114억7400만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170억4100만 달러)보다 45% 감소했다. 밀수품은 2766억여 원어치(정품가 기준)가 적발돼 지난해 같은 기간(4817억여 원)의 57% 수준. 보통 항만에서는 합법을 가장해 컨테이너를 통한 저가품이나 중국산 짝퉁 제품의 대량 밀수가 이뤄진다. 공항은 항공료가 비싸기 때문에 부피가 작고, 시세차익이 큰 금괴와 마약, 보석류 등이 주로 밀수된다. 하지만 경기가 침체되면 밀수 규모도 따라서 줄어든다는 것이 세관의 설명이다.
경기가 좋을 때 잘 팔리는 시계 및 보석류와 외환, 마약 등 대부분의 품목은 지난해에 비해 밀수 규모가 크게 줄었다. 또 부피가 커 운송비가 많이 들지만 시세차익은 크지 않은 농산물도 감소했다.
그러나 국내 경기의 침체로 지갑이 얇아진 20, 30대의 명품 선호심리가 반영된 탓인지 짝퉁 의류와 신발, 지갑, 액세서리와 같은 잡화류는 크게 늘었다. 발기부전치료제 밀수액이 400배 가까이 늘어난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해 1∼4월 압수된 발기부전치료제는 1억여 원어치였으나 올해는 390억여 원어치로 급증했다.
인천=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