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속담이 있다. 먹고살 만큼 넉넉해야 다른 사람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요즘 상황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곳간이 가득 찰수록 인심은커녕 근심만 늘고 있다. 쌀값이 떨어지면서 지역마다 벼 재고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원래 봄철은 햅쌀이 나오기 전 묵은쌀이 떨어지면서 공급이 부족해 쌀값이 뛰는 시기다. 그러나 지속적인 쌀 소비 감소 추세와 함께 지난해 풍년으로 공급량이 늘어난 데다 경기침체라는 악재까지 겹치면서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 브랜드 쌀이 더 고전
2004년 500만 t을 기록한 국내 쌀 생산량은 이듬해부터 3년 연속 줄면서 2007년 440만 t까지 떨어졌다. 그러다 지난해 모처럼 풍작을 거두면서 2004년 이후 가장 많은 484만 t을 수확했다. 반면 쌀 소비는 계속 감소해 지난해 1인당 국내 쌀 소비량은 75.8kg에 불과했다. 생산이 늘고 소비는 줄다 보니 곳간마다 쌀 포대가 쌓여만 가고 있다. 농협중앙회 등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농협과 민간 미곡종합처리장(RPC) 등지의 쌀 재고량은 117만8000t으로 1년 전(83만8000t)에 비해 40.6%(약 34만 t)가 늘었다.
가격도 떨어져 지난달 말 기준으로 쌀 80kg의 산지 가격은 평균 15만8672원으로 지난해 수확기 때 16만2416원에 비해 2.3% 하락했다. 반면 지난해 5월에는 쌀 80kg의 가격이 15만8540원으로 전년도(2007년) 수확기 때 15만196원보다 훨씬 비쌌다. 경남 김해지역의 경우 쌀 20kg들이 1포대 가격이 올해 초 3만9000원대에서 최근 3만6000원대로 떨어졌다. 경남도 관계자는 “지난해 풍작과 소비 둔화, 대북지원 중단 등으로 재고량이 전국적으로 늘었다”며 “경남 상황은 벼 재배면적이 넓은 전남 등지에 비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비싼데도 인기가 높았던 경기미 등 브랜드쌀의 상황은 더 힘들다. 대표적인 경기미 중 하나인 이천쌀은 지난해보다 판매량은 약 20% 줄어든 반면 재고량은 40% 이상 늘었다.
가격도 지난해 20kg들이 1포대가 6만2000원대에 달했으나 최근에는 5만5000원대에 거래된다. 여주쌀도 10% 이상 가격이 떨어졌다. 브랜드쌀의 고전은 불황으로 값비싼 쌀 구입을 꺼리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경기 이천시 관계자는 “경기가 어렵더라도 쌀을 안 먹을 수는 없지 않느냐”며 “그 대신 값비싼 브랜드쌀 구입을 꺼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 “쌀 소비 묘수를 찾아라”
쌀 재고가 늘면서 지방자치단체마다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강원 철원군은 ‘오대쌀’을 사용하는 음식점을 대상으로 간판 지원을 하고 있다. 이천시는 이달 초부터 ‘이천쌀 팔아주기’ 운동을 시작했다. 우선 전체 공무원을 대상으로 분식 대신 쌀밥 먹기, 이천쌀 선물하기, 쌀케이크 사먹기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또 사이버외교사절단인 반크(VANK), 전국 미아·실종가족 찾기 시민의 모임 등과 협약을 맺고 독도사랑 및 실종아동 찾기 운동과 이천쌀 홍보를 함께 실시하기로 했다. 경기 평택시는 특산물인 ‘슈퍼오닝쌀’의 해외 판로 확대에 나섰고 경북도는 고급 브랜드쌀의 학교급식 사용을 추진 중이다.
철원군 관계자는 “서울의 대형마트에서 판촉행사를 해야 하는데 브랜드 간 경쟁이 워낙 치열해 이런 행사도 대기해야 할 정도”라고 밝혔다.
성남=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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