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충남]대덕밸리 이야기<4>한국전자통신硏박문호 박사

  • 입력 2009년 6월 18일 06시 50분


“한 분야의 전문가 되려면 관련책 3000권은 읽어야”

소년은 중학교(울진 구포중)에 들어가자 도서관으로 먼저 달려갔다. 지금 생각하면 변변찮지만 산골 초등학교의 도서관과는 비교도 안 되게 훌륭했다. 천문 우주에 관한 책을 하나 꺼내들었다. ‘우주에는 1000억 개의 갤럭시(은하계)가 있다.’ 소년은 이 구절에 충격을 받고 이렇게 되뇌었다. “나도 언젠가는 우주와 문화, 역사 등 많은 분야를 깊이 이해하고 말거야.”

독서클럽 ‘100Books(백북스·www.100booksclub.com)’를 이끌고 있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문호 박사(50·책임연구원)의 이야기다. 그의 어린 시절은 빌 게이츠를 떠올리게 한다. 빌 게이츠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오늘날의 나를 만든 것은 동네의 ‘작은 공공 도서관’이었습니다. 책 읽는 습관은 하버드대의 졸업장보다 더 중요합니다.”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박 박사는 전자통신연구원에서 일하다 1991∼97년 미국 텍사스 A&M대에 유학하면서 그 분야의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지만 오히려 천문학과 물리학, 뇌 과학 분야의 전문가로 통한다. ‘연구공간 수유+너머’, 삼성경제연구원, 서울대, KAIST, 불교TV 등에서 우주와 자연, 뇌를 주제로 강연해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 펴낸 ‘뇌, 생각의 출현’은 그해 베스트 10에 오르기도 했다.

“자연과학의 세계관을 통합적으로 이해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30년 동안 자연과학 분야의 책을 꾸준히 읽었어요. 특히 뇌 과학, 천체물리학, 상대성이론, 양자역학에 대해 집중적으로 읽어 나갔죠.”

독서클럽 100Books 이끌며 요즘도 매주 6권씩 구입
자연과학을 잘 아는 오피니언 리더 많아야 경쟁력 있는 국가 만들어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은 대학시절부터 본격화한 독서였다. 지난 10여 년 동안에만 3000권가량을 읽었다. 그 중엔 일부만 읽은 것도 있지만 5번 이상 읽은 책도 많다. 그는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려면 3000권 정도의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인터넷보다는 오프라인 서점을 선호하는 그는 매주 한 번씩은 서점에 가 6권가량의 책을 구입해 읽었다.

박 박사는 평일에는 새벽시간에 주로 책을 읽는다. 오후 9시경 잠자리에 들어 일찍 일어나 책을 읽고 조깅을 한 뒤 출근한다. 주말은 그가 독서삼매경에 빠져드는 시간이다. 휴대전화까지 꺼놓고 책 읽기에 몰두한다.

그의 독서의 특징은 ‘교과서 주의’와 ‘자연과학 주의’에 있다. 우선 그가 읽은 3000권의 책 가운데 70%는 대학 교과서이다. 교과서는 권위 있는 수많은 논문과 지식이 집적된 산물이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자연과학 독서를 강조하는 이유는 대부분의 독서가 인문학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려면 다양한 분야의 학습독서가 필수적입니다. 특히 자연과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죠. 자연과학을 아는 오피니언 리더가 많아야 경쟁력 있는 나라가 됩니다. ‘융합(convergence)’의 시대에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통합된 사고가 중요합니다. 시와 문학 종교 예술을 통합하는 문화적 프레임으로서의 과학을 주목해야 합니다.”

박 박사는 독서에 일가견을 갖게 되자 스스로 독서모임을 만들려다가 한남대 교수들이 운영하는 100books를 발견하고 일단 참여하기로 했다. 2002년의 일이다. 그는 이 모임에서 그동안 경제경영 분야 위주의 독서패턴을 자신의 소신대로 자연과학 위주로 바꾸었다. 지금의 100books는 취미 모임이라기보다는 ‘학습공동체’다. 온라인 회원이 6000명을 넘어섰고 오프라인 모임도 수백 명씩 참여한다. ‘천문우주+뇌과학’, ‘경영경제’ ‘창의성 디자인’, ‘수학’, ‘137억 년 우주의 진화’ 등 5개의 소모임에서는 고교 교실 같은 분위기의 학습독서가 이뤄진다.

박 박사는 독서의 마니아가 되는 방법으로 현장학습과 동호회 활동을 제시했다. “배운 것을 현장에서 확인하며 감동을 느껴야 독서에 흥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독서 동아리에서 책을 읽어 알게 된 지식을 발표하고 과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식을 과시하는 것을 경원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지명훈 기자 mhjee@donga.com

공동기획:동아일보 대덕연구개발특구지원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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