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도시절부터 40년 情, 나란히 2함대사령관 지내
北과 1, 2차 서해교전 인연“사명감 투철한 후배였다”
1999년 해군 2함대사령관으로 1차 연평해전을 지휘한 박정성 예비역 소장(60·해사 25기). 그는 2002년 2차 연평해전 때 역시 해군 2함대사령관으로 북한의 기습도발에 맞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수호작전을 지휘했던 정병칠 예비역 소장(59·해사 28기)을 19일 떠나보냈다.
정 소장은 지난달 초 가벼운 감기 증세로 인근 병원을 찾았다. 잦은 기침과 목소리가 쉬는 증세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그는 조직검사 결과 폐암 말기라는 판정을 받았다. 이후 그는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증세가 급격히 악화돼 중환자실에서 투병생활을 하다 이날 오전 끝내 숨을 거뒀다.
해군 관계자는 “2차 연평해전 기념식이 지난해 처음으로 정부 기념행사로 격상된 뒤 올해 두 번째 행사를 앞두고 정 소장이 세상을 떠 선후배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더 크다”고 말했다. 지난해 2차 연평해전 희생자 6주기 추모식에서 한승수 국무총리는 당시 전투에 대해 “서해 NLL을 사수하기 위해 해군 장병이 북의 기습도발을 온몸으로 막아내 승리한 해전”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 소장은 최근까지 2차 연평해전 때 북한 경비정의 선제도발에 맞서 서해 NLL을 지키다 전사한 부하들을 떠올리며 가슴앓이를 했다고 한다. 7년이 흘렀지만 2함대사령관으로서 비명에 부하들을 보낸 아픔과 회한을 지인들에게 토로하며 자책하기도 했다.
부인 김양심 씨는 “교전 직후 병원을 찾아 중상을 입은 박동혁 병장의 손을 잡고 ‘내가 꼭 살려주겠다’며 눈시울을 붉히던 남편의 모습이 생생하다”며 “남편은 최근까지 ‘전사한 부하들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린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씨는 “남편은 또 매년 6월 TV나 신문 등에서 서해교전(2차 연평해전) 관련 행사나 전사자 유족들에 관한 보도를 접할 때마다 가슴 아파했다”고 말했다.
2차 연평해전의 전사자는 해군고속정 정장(艇長)이던 윤영하 소령을 비롯해 한상국 조천형 황도현 서후원 중사와 박동혁 병장 등 6명이다.
정 소장은 또 가벼운 부상자만 발생한 1차 연평해전과 비교해 다수의 장병이 희생된 2차 연평해전에 대한 일각의 비판에 대해 생전에 심적 부담을 크게 느꼈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 때문에 합참 전력기획부장과 해군 군수사령관 등을 거쳐 2007년 4월 예편한 뒤에도 정 소장은 2차 연평해전이 남긴 마음의 짐을 벗지 못했다.
그의 이런 심경을 가장 잘 헤아리고 어루만진 사람이 박 소장이었다. 정 소장은 “부하들을 떠올리면 가슴이 답답하다”, “자꾸만 부하들이 눈에 밟힌다”며 전장에서 부하를 잃은 아픔을 호소했고 그때마다 박 소장은 “그 마음 잘 안다. 이젠 그만 털어내라”며 위로하고 힘을 북돋웠다.
박 소장은 정 소장이 입원한 뒤에도 자주 병실을 찾아 격려했고 숨을 거두는 날 새벽까지 병실을 지켰다. 박 소장은 “잠시 집에 다녀오는 몇 시간 사이 운명해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박 소장은 “정 소장은 책임감이 투철하고 사명감으로 똘똘 뭉친 후배이자 훌륭한 지휘관이었다”며 “그는 어떤 의미에서 2차 연평해전의 마지막 전사자”라고 말했다.
이날 빈소를 지키던 박 소장은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3주 전 정 소장이 딸에게 부탁해 보내 온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찾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메시지에는 “선배님 제가 몸이 많이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곧 나아서 뵙도록 하겠습니다”라고 쓰여 있었다. 고인은 22일 오전 발인 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