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독서로 논술잡기]‘위대한 패배자’

  • 입력 2009년 6월 22일 02시 56분


◇ ‘위대한 패배자’/볼프 슈나이더 지음·박종대 옮김(을유문화사)

살아서 인정못받은 고흐… 정신착란에 빠진 니체…

‘위대한 패배자들’, 왜 우리는 그들에게 감동할까

오늘날 우리는 승리자에 열광한다. 승자의 전설을 만들고 그의 능력을 배우려고 한다. 승리자가 야비한 술수로 승자가 됐더라도 그에 대한 비난은 일시적이다. 이런 현상을 이 책은 경쟁의 효율성만을 사회발전 논리로 부각한 결과라고 본다. 나아가 과정보다 결과가 중시되고 ‘좋은 승자와 나쁜 패자’라는 전형적인 틀이 만들어진다고 지적한다. 역사적으로 패자는 승자보다 비정하지도 비열하지도 않았다. 패자에게는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 책은 패자들의 진실한 이야기를 다룬다. 일부의 내용을 논술과 관련시켜 보자.

『(가) 이사크 바벨의 ‘기병대’라는 책은 러시아-폴란드 전쟁에서의 약탈과 살육, 강간, 그리고 인간의 머리로 상상할 수 있는 온갖 잔혹한 짓이 망라되어 있다. 작가는 이런 참상을 아무런 해석 없이 간결하고 치밀한 언어로 그저 묵묵히 보고만 하고 있다. (중략) 이후 바벨은 끊임없이 돈 부족에 시달렸다. 일정한 거처도 없이 여러 곳을 전전했고 직업도 국립인쇄소 직원부터 기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 문서기록실 담당자 등 닥치는 대로 일했다. 1926년 모스크바에서 ‘기병대’가 출간되었고, 서방 세계는 이 소설을 천재적 작품으로 찬탄했지만 나치는 1933년에 금서 목록에 올렸다. 이사크 바벨은 훗날 반혁명분자로 찍혀 루비안카 감옥에서 총살되었거나 시베리아에서 행방불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328∼338쪽).

(나) 고흐의 그림만을 대상으로 첫 전시회가 열린 것은 그가 죽은 지 2년 뒤 일이었다. 1910년에는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큰 독일의 미술사가 율리우스 마이어 그레페(Julius Meier-Graefe)가 처음으로 미술계 일반에 고흐를 소개하였다. 고흐는 1930년대부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기 시작해서 오늘날에는 그의 전시장만큼 북적거리는 곳이 없을 정도다. 아를에서는 그의 초상화가 그려진 티셔츠와 넥타이, 볼펜 등이 팔리고 있고, 오베르 마을의 묘지는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이 모든 것에도 이제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고흐에게 쏟아진 그런 엄청난 명예는 그의 천재적인 재능만 때문만이 아니라 처절한 비극적인 삶이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354쪽).』

① ‘(가)에서 이사크 바벨이 위대한 패배자로 추앙받는 이유를 제시하고, 오늘날 작가들에게 요구되는 교훈을 밝히시오’를 만들어 보자.

이사크 바벨의 ‘기병대’라는 작품은 전쟁의 참상을 있는 그대로 고발한다. 그것을 위해 그는 치밀한 언어와 간결한 문체를 사용했다. 써놓은 문장에서 더는 잘라낼 문장이 없을 때 바벨은 이것을 완벽한 문장이라고 간주했다. 치열한 작가 정신이 발휘된 이 작품은 나치의 검열에 걸려 금서가 되었고, 이후 그는 글을 쓰지 못했다. 바벨은 총살(또는 행방불명)되고 남은 원고도 잃어버린 비극적인 작가였으나 생전에 자신의 문학적 창조력에 목숨을 걸고 작품을 창작한 인물이다. 그런 점에서 이사크 바벨은 ‘위대한 패배자’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작가들이 바벨의 치열한 작가 정신을 교훈으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작가는 현실참여적인 정신에서 삶의 진실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② ‘(나)에서 사후에 고흐가 명예를 누린 이유를 밝히고, 그와 유사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하시오’를 만들어 보자.

고흐는 생전에 동시대인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고흐의 작품이 사후에 인정받은 이유는 그의 비극적인 삶과 연관된다. 그는 광부들의 비참한 생활에 충격을 받아 자신도 광부들과 함께 갱으로 내려가 끔찍한 노동에 시달리는 체험을 했다. 굶주림에 고통 받고 정신적, 육체적인 파멸에 이르는 생활을 한 것이다. 이런 고흐의 예술정신이 사후 후세인에게 감동을 준다. 모차르트의 초라한 묘지, 베토벤의 청각 상실, 나폴레옹의 비참한 최후, 클라이스트의 극적인 자살, 니체의 정신착란 등 비극적 상황을 이와 유사한 사례로 들 수 있다. ‘가치 평가에 있어 여전히 확고한 기준이 없는 후세 사람들은 고통을 겪은 유명인에게 더 큰 애정을 느끼게 마련이다’라고 한 볼프강의 말은 일리가 있다..

역사는 1등만을 기억하지 않는다. 승리자들로만 가득 찬 세상은 끔찍하다. 이 책은 비참한 패배자, 영광스러운 패배자, 승리를 사기당한 패배자, 끝없이 추락한 패배자, 살아서는 인정받지 못한 패배자를 다룬다. 이들은 기회를 포착해서 충분히 승리를 거둘 수 있었지만 강한 경쟁자에게 막혀 수모를 겪고 꿈을 접은 비극적인 인물들이다. 승리자들에게 창피한 방식으로 패배를 인정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들의 아름다운 패배에 감동을 느낀다. 이 책은 오늘날 대다수 사람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다.

이도희 선생님

▶easynonsul.com에 동영상 강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