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知논술/고전여행]‘상군서’

  • 입력 2009년 6월 22일 02시 56분


◇ 상군서(상앙 지음, 장현근 편역·살림)

‘法대로’ 완벽한 사회는 모두가 행복할까

세상은 엉망진창이었다. 도덕, 윤리 따위는 누구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아비, 어미도 밥 먹듯이 배신했다. 상황이 이럴수록 나라마다 뛰어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데 열을 올리기 마련이다. 이름 날리던 전략가들은 ‘몸값’을 올리며 이 나라 저 나라 옮겨 다녔다. 이른바 전국시대(戰國時代)의 모습이다.

상앙(기원전 390∼338년)도 세상을 떠돌던 전략가 가운데 하나였다. 진(秦)을 다스리던 효공(孝公)이 그를 ‘스카우트’했다. 어디에서나 굴러온 돌은 밉상인가 보다. ‘박힌 돌’은 그가 내놓은 개혁안에 강하게 반대했다. 이익이 백 배나 커지지 않는다면, 섣불리 변혁 운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상앙은 단호했다. “백성이란 함께 의논할 상대가 아닙니다. (나중에 거둘) 성공을 같이 즐기면 되는 대상일 뿐이지요.” 한마디로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밀어붙이겠다는 태도였다.

상군서는 이런 상앙의 생각을 담은 책이다. 상앙의 개혁 방안은 간단명료했다. 상과 벌을 간단하게 하라. 누구도 알아들을 만큼 법을 분명하게 하라. 상벌을 주는 데 있어서는 누구도 예외가 없게끔 하라.

그는 ‘이익은 한 구멍에서만 나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상앙은 철저한 실적주의였다. 출세의 길은 농전(農戰) 한 가지밖에 없어야 한다. 농사를 열심히 짓거나 전쟁에서 적의 목을 많이 베어야 한다는 식이다.

예술이나 도덕 운운하는 치들은 국가를 좀먹는 벌레일 뿐이다. 그럴듯한 말주변과 묘한 재주로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면, 누가 논밭을 매고 목숨 걸고 싸우려 하겠는가. 농사와 전쟁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일이다. 힘든 작업을 높이 여기고 ‘이익이 생길 다른 구멍’을 틀어막으면 나라는 금세 부강해질 것이다. 놀고먹던 특권층을 정면으로 겨누는 말이다.

법 집행은 엄해야 한다. 예외가 있어서도 안 된다. 죄가 가볍고 무거운지를 가리기 시작하면 법은 복잡해진다. 그러면 사람들은 법망을 빠져나가려고 머리를 굴리게 된다. 가벼운 죄도 무겁게 다스려 보라. 상앙은 아끼는 신하의 허리를 잘라버린 진(晉) 문공의 예를 든다. 회의에 늦은 사람은 사형에 처한다는 법 규정 때문이었다. 이렇듯 법이 엄하면 결국은 처벌의 필요성 자체가 없어진다. 사람들이 법을 어길 엄두를 내지 못하는 까닭이다.

“정치 잘하는 임금에게는 충신이 따로 없다. 자비로운 어버이에게도 효자가 따로 없다.” 모든 게 법대로 돌아가는 세상이기에, 굳이 인(仁)이니 예(禮)니 해가며 잔소리 해댈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상앙은 비리가 싹틀 여지도 없앴다. 관리들은 민원을 하루 넘겨서 처리하면 안 되었다. 딴 꿍꿍이를 할 겨를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아무리 신분이 높아도 법의 규정을 한 자라도 어겼다간 치도곤(곤장)을 당했다. 백성들도 의심되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고발을 해야 했다. 안 그랬다가는 다섯 가족이 몰살을 당했다. 상앙은 다섯 가구씩 묶어서 책임을 한꺼번에 따졌다. 서로서로 감시하고 조심해야 했던 구조다.

상앙의 개혁안은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국력이 크게 자란 진나라는 진시황 대(代)에 중국을 통일했다. 상앙 같은 법가(法家)의 엄격한 통치철학이 없었다면, 진시황의 강력함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상앙의 말년은 좋지 못했다. 효공이 죽자 사람들은 그의 팔다리를 찢어 죽였다. 진시황의 나라도 오래가지 못했다. 황제가 죽자마자 나라는 산산조각 나버렸다.

예나 지금이나 약육강식의 법칙은 세상을 지배한다. 그럼에도 상앙이 미움 받고 사랑과 자유가 강조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상앙의 성공과 몰락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안광복 중동고 철학교사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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