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에 사는 유재원 씨(66)는 매일 오전 7시경 집을 나선다. 유 씨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리는 광교산 자락.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 구불구불한 등산로를 걷다보면 광교저수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비스듬한 분지에 다다른다. 유 씨가 직접 농사를 짓는 밭이 이곳에 있다. 1000m² 규모의 제법 큰 밭이다. 상추와 토마토는 물론 가시오가피, 마, 야콘 등 각종 특용작물까지 30여 종류의 작물이 자라고 있다. 유 씨는 “작물이 많아 하루라도 손을 놓으면 안 된다”며 “요즘은 해가 뜨거워 오전 중에 일을 모두 마치고 들어간다”고 말했다.
○ 재취업 대신 농사꾼의 길 선택
공기업 간부 출신인 유 씨가 농사꾼의 길로 들어선 것은 퇴직 직후인 2002년. 재취업을 위해 이곳저곳을 수소문했지만 여의치 않자 소일거리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 벌써 8년째다. 처음에는 토마토나 고추 같은 손쉬운 작물을 주로 재배했다. 책과 인터넷을 뒤지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농사정보를 얻었지만 실패한 경우가 더 많았다. 고추는 탄저병에 걸려 죽어나가기 일쑤였고 토마토는 가족이 먹기도 부족할 만큼 수확량이 적었다. 어린 시절에 잠깐 농사일을 도와본 경험뿐인 유 씨로서는 당연한 결과였다.
유 씨가 농사에 눈을 뜬 것은 지난해 수원시농업기술센터의 전원농업교육을 통해서다. 다양한 작물의 특성과 재배방법은 물론이고 산성화된 땅의 성질을 바꾸고 퇴비를 숙성시키는 전문기술까지 배웠다. 6개월간 이론 및 실습교육을 거치면서 유 씨는 주변으로부터 “진짜 농사꾼이 다 됐다”는 소리를 들었다. 지난해 가을에는 수확한 작물을 이웃과 지인들에게 모두 나눠줬다.
유 씨는 “농사는 쉬운 일도, 낭만적인 일도 아니다”며 “땀 흘려 일하는 것을 행복하게 느낄 줄 알아야 농사를 지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안전한 먹을거리를 내 손으로
유 씨처럼 도심에서 자신의 먹을거리를 직접 재배하는 사람들을 ‘시티파머(city farmer)’라고 부른다. 최근 세계적으로 식품의 안전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시티파머가 크게 늘고 있다. 22일 수원시에 따르면 캐나다 밴쿠버 시에서는 시민 44%가 먹을거리를 직접 가꿀 정도로 시티파머가 일상에 자리 잡았다. 밴쿠버 시는 2006년 시내 곳곳에 215개의 공공 텃밭을 만드는 등 내년까지 2010개의 도심 속 공공 텃밭을 일구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약 8억 명의 시티파머가 활동 중이다.
수원시도 지난해부터 전원농업교육과정을 개설해 시티파머를 양성하고 있다. 연간 50여 명을 대상으로 6개월간 이론과 실습교육을 실시한다. 참가자들은 5만∼6만 원의 텃밭 임차료와 모종 구입비 등만 내면 된다. 박현자 수원시농업기술센터 인력육성팀장은 “정년퇴직한 사람들뿐 아니라 젊은 부부들도 텃밭을 가꾸는 데 관심이 많다”며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해 이웃과 나누는 생활문화가 확대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성호 기자 star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