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영어(營漁)조합법인에 속지 마세요.”
수산업 종사자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설립을 허가하는 비영리단체인 영어조합법인을 차려 놓고 사기행각을 벌여 온 일당이 무더기로 붙잡혔다. 이들은 자본금이 한 푼 없어도 출자이행증명서만 제출하면 수백억 원을 보유한 등기부등본을 만들 수 있다는 제도적 허점을 악용했다. 인천과 경기 부천시는 물론이고 전국에 40여 개가 넘는 지역 법인을 설립한 뒤 각종 사업권을 따주겠다며 거액을 챙겨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 황당한 사기 수법
해양경찰청은 최근 사단법인 한국영어조합법인 중앙회장 황모 씨(53)와 유모 씨(41) 등 3명을 상습 사기 등의 혐의로 구속했다. 또 해경은 황 씨 등과 짜고 사기행각을 벌여 온 최모 씨(64) 등 7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
해경에 따르면 황 씨 등은 2006년 수산업자인 것처럼 서류를 꾸며 해양수산부에서 사단법인 설립허가를 받아 인천 중구 항동에 중앙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는 자영업자와 사업가 등에게 접근해 “영어조합법인을 설립하면 정부 지원금을 낮은 이자에 대출받을 수 있고 각종 부동산 개발사업에도 참여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꼬드겼다.
황 씨와 유 씨 등 10명은 20억 원씩 모두 200억 원을 출자한다는 내용의 증명서를 지방법원에 중복해서 제출해 법인 등기부등본을 만들었다. 등본에는 법인 설립 목적을 ‘생산성 향상을 위한 협업적 수산업의 경영과 사업을 주로 한다’라고 명시했다.
이때부터 대담한 사기극이 시작됐다. 같은 해 5월 선박업자 고모 씨(44)에게 “법인을 설립한 뒤 중앙회에 가입하면 선박관리업 허가를 받아주겠다”고 속여 5000만 원을 받아 가로챘다. 또 두 달 뒤인 7월 인천의 어민 백모 씨(51)에게 “중앙회에서 어선을 매입하겠다”고 한 뒤 배를 다른 사람에게 팔아 3억5000여만 원을 챙겼다. 또 지난해 7월에는 경기 평택으로 이전하는 미군 부대에서 발생하는 고철처리사업권을 상이군경회에서 수의계약으로 받아주겠다며 건설업자 김모 씨(51)에게 2억 원을 받았다.
이들은 해경의 수사가 시작된 것을 알면서도 최근 인천 중구 항동의 한 자동차하치장 1만2000여 m²에 회센터가 입주하는 주상복합건물을 신축해 분양한다며 투자자를 끌어 모으는 대담함을 보였다. 2월에는 더욱 광범위한 사기극을 펼치기 위해 농림수산식품부에 영농조합법인 중앙회 설립신청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 부실한 제도에 피해자만 늘어
영어조합법인은 어업과 양식업 등 각종 수산업 종사자의 생산 활동을 보호하고, 공동이용시설의 설치 및 운영을 장려하기 위해 수산업법에 근거해 1995년 시행됐다. 정부가 설립을 허가한 법인은 각종 세제혜택과 같은 지원을 받을 수 있다. 현재 전국에 390여 개가 설립돼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해경은 파악하고 있다.
그러나 황 씨 등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 법인인 것처럼 위장해 자본금도 없이 출자이행증서를 제출한 뒤 법인을 만들어 사기극을 펼쳐 왔다. 엉터리 법인을 설립해도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이를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고 있는 현실을 파고든 것. 또 이들에게 사기당한 사실을 알게 된 피해자들은 사단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해야 한다며 옛 해양수산부에 수차례에 걸쳐 민원을 제출했다. 하지만 해양부는 현행법상 이들 조합에 대해 조사할 권한이 없다는 이유로 3년째 수수방관했다는 것이 해경의 설명이다. 해경 남상욱 형사과장은 “황 씨 등이 주도해 만든 전국 영어조합법인 가운데 일부만 수사했기 때문에 피해 규모는 더욱 늘어날 것 같다”며 “허술한 규정과 제도를 고쳐야 한다”고 말했다.
황금천 기자 kc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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