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MB(이명박)’ 교육정책을 내걸고 4월 당선된 진보진영 출신의 김상곤 경기도교육감이 추진하는 핵심정책의 예산이 최근 대폭 삭감되면서 대표적 공약 사업들이 좌초 위기에 빠졌다. 김 교육감은 취임 이후 50여 일간 혁신학교 도입과 무상급식 확대, 고교평준화 확대 등 3가지 정책의 세부 일정을 마련하고 본격 추진하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경기도교육위원회는 23일 “절차에 문제가 있다. 시급한 현안이 많다”며 2차 추경예산에 편성된 혁신학교 운영비 28억 원 전액, 무상급식비 171억 원 중 절반을 삭감했다. 고교평준화 연구용역비 1억6000만 원만 통과시켰다. 일부에서는 교육위원회가 정치적 이유로 진보성향 교육감의 발목을 잡고 견제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 공교육 정상화 vs 절차에 문제 있다
도교육청은 올해 하반기에 25개의 혁신학교를 지정 운영키로 하고 학교당 1억 원씩을 지원할 방침이었다. 혁신학교는 김 교육감이 제시한 공교육혁신 모델로 과대학교 과밀학급을 재편해 한 학년 5개 반 이하, 학급당 25명 이내로 만드는 소규모 학교다. 교장도 평교사 가운데 공모제로 뽑을 수 있고 교장은 교사 선발이 가능하다. 도교육청은 도내 28개 학교에 공문을 보내 혁신학교를 신청토록 했고, 최종으로 초등 2개교, 중등 3개교 등 5개교가 신청했다.
예산 삭감을 찬성한 강관희 교육위원 등은 “교육청 일부 장학관들이 모여서 지역교육청에는 알리지도 않고 일부 학교에 직접 공문을 보냈다”며 “전체 학교로부터 신청을 받았어야 했는데 정당한 절차가 무시됐으니 다시 검토하라고 삭감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교육감은 “혁신학교는 농산어촌과 도심낙후지역의 학교를 대상으로 공교육을 정상화, 내실화, 활성화하고자 하는 취지”라며 “경기도민과의 약속이 이행되지 않으면 예산 지원 없이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 급식지원 우선 vs 시설투자 시급
김 교육감은 내년 말까지 전체 초등학생을 비롯해 100만 명의 학생에게 무상급식을 확대할 계획이었다. 올해 하반기에 15만3520명의 초등생 급식예산을 추가 책정했지만 절반이 삭감됐다. 김 교육감은 “농산어촌 도서벽지 등 차상위 계층의 어려운 아이들을 위한 것인데 너무나 안타깝다”며 “24일 청와대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도 ‘급식비가 얼마나 되느냐’며 관심을 가졌는데 정말 허무하다”고 말했다. 현재 전국에서 62만 명의 저소득층 학생들이 무료급식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을 삭감한 위원들은 “무상급식보다 노후 학교 시설이나 환경 개선 등에 투자해야 한다. 우선순위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처음에는 전액 삭감을 주장하다가 절반만 삭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예산 삭감을 반대했던 이재삼 위원과 최창의 위원은 도민들께 사죄한다며 23일부터 3일째 도교육청 본회의장에서 농성 중이다.
○ 공은 도의회 교육위원회로
이제 공은 최종 예산심의권을 가진 경기도의회 교육위원회로 넘어갔다. 다음 달 7일부터 22일까지 열리는 도의회에서 최종 결정된다. 13명의 위원 중 한나라당이 11명, 민주당이 2명이다. 도의회 유재원 교육위원회 위원장은 “아직 예산 명세도 받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도교육청 교육전문가들이 심의했기 때문에 우리 위원들이 어느 정도 존중해 주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에 따라 도교육청은 혁신학교는 재정 지원 없이 추진하는 등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도교육청 이장우 학교정책과장은 “해당 학교운영비로 충당하고 열정 있는 교장과 교사가 프로그램을 맡도록 하겠다”며 “25개교를 대상으로 할지 아니면 학교수를 줄일지 3가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무상급식은 축소해서 도서벽지 2만1000명은 무료급식하고, 농산어촌 12만5000명은 학부모 부담을 1400원에서 600원으로 경감해 줄 방침이다.
수원=남경현 기자 bibul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