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징크스의 시즌’ 시험기간

  • 입력 2009년 6월 30일 02시 55분


“죽 먹지마… 거울 깨뜨리지 말고… 쉿, 말도 적게”
‘징크스의 시즌’ 시험기간… 교실 곳곳 이상한 풍경 속출

“시험 기간엔 미역국, 죽을 절대 먹지 않아요. 거울을 깨뜨리는 건 금물. 쉿! 말을 많이 해서도 안 돼요.”

기말고사가 코앞으로 다가온 요즘 중고교 교실에선 ‘이상한 행동’을 하는 학생들이 자주 목격된다. 머리를 감으면 공부한 내용을 모두 잊어버린다는 미신 때문에 며칠씩 머리를 감지 않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자는 동안 책 속에 있는 모든 정보가 머릿속으로 흡수되길 바라는 마음에 딱딱한 책을 베고 책상 위에 엎드려 토막 잠을 자는 학생도 있다.

시험에 대한 근원적 두려움은 감수성이 예민한 중고교생들 사이에 기상천외한 징크스들을 생산해내곤 한다.

중3 장민정 양(15·제주 제주시 내도동)도 시험이 다가오면 각별히 몸조심을 한다. 부주의하게 몸을 움직이다 책상 위에 있는 필기구가 땅에 떨어지면 성적이 뚝 떨어지는 불운이 찾아온다고 믿기 때문이다.

앞 머리카락이 길어 두 눈을 콕콕 찔러도 시험기간엔 절대 자르지 않는다. 그동안 열심히 머릿속에 저장해 둔 영어단어와 수학공식들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순간 허공으로 날아갈 것만 같다. 손톱도 같은 이유에서 자르지 않는다.

“조금 지저분해 보이면 어때요. 성적을 올릴 수만 있다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징크스 때문에 시험을 망치는 일이 없도록 조심 또 조심해요.”(장 양)

징크스와는 반대로 ‘이렇게 하면 성적이 올라간다’는 믿음을 가진 학생들도 있다. 고3 서모 군(18·경기 하남시)은 “이성친구의 방석 위에 앉아 공부하면 성적이 오른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여자친구의 핑크 방석을 깔고 앉아 공부한 적이 있다”면서 “수학성적이 진짜로 10점이나 올랐다. 시험기간만 되면 그 방석을 애용한다”고 했다.

하지만 이런 학생들도 시험이 고역이긴 마찬가지다. 성적 향상에 도움이 되는 방법을 알고 있어도 대부분 쉽게 얻을 수 없거나 따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성적 향상의 ‘부적’으로 통하는 반 1등의 필기노트와 반 1등이 쓰던 펜 한 자루를 손에 넣으려면 한 달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심지어 전교 1등의 머리카락 한 올은 경매에 부쳐지기도 한다.

기를 모으는데 도움이 된다는 금반지는 일주일 용돈 1만 원인 학생들에겐 ‘그림의 떡’이다. 초콜릿을 먹지 않으면 공부를 망친다는 징크스 때문에 체중이 불어 고민인 여학생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궁금하다. 전교 1등에게도 징크스가 있을까? 중학교 입학 후 한 번도 전교 1등을 놓쳐본 적이 없는 3학년 권영호 군(15·서울 노원구 상계동)에겐 ‘시험 직전 물을 마셔야 시험을 잘 본다’는 징크스가 있다.

“물을 마시는 게 두뇌회전에 도움이 된다는 엄마의 말씀을 듣고 한번 해 봤는데 진짜 효과가 있더라고요. 머리가 확 맑아지는 느낌이랄까. 깜빡 잊고 물을 마시지 않으면 시험 시간 집중력이 떨어져 실수가 생겨요. 그래서 시험 직전 한 모금이라도 꼭 물을 마시는 게 버릇이 됐어요.”(권 군)

고교 입시 및 대입에서 학교 내신 성적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더욱 절박한 심정이 되어 징크스를 두려워한다고 학생들은 전한다. 학생들의 징크스는 새로운 유행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염주를 팔목에 차고 있으면 심리적으로 안정이 돼 성적이 올라간다”는 한 학생의 말에 따라 교내에 염주가 유행처럼 퍼졌던 학교도 있다. 시험을 잘 ‘보라’는 의미의 거울, 정답을 잘 ‘찍으라’는 의미의 포크,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초콜릿과 엿, 비타민C 제품을 친한 친구에게 선물하는 문화는 여전하다.

“이번 기말고사 때 친구들과 나눠 먹을 초콜릿을 잔뜩 사 놨어요. 성적이 안 오르면 어떻게 하냐고요? 초콜릿 안 먹고 초조해하는 것보단 초콜릿 먹고 맘 편히 공부하는 것이 더 낫잖아요. 하하.”(장민정 양)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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