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말리기, 말리기라기보다도 바람 쐬기다. 햇볕도 있어야 하지만 바람이 있어야 한다. 안개 같은 것이 낀 날은 좋지 못하다. 안개가 걷히며 바람 한 점 없이 해가 갑자기 쨍쨍 내리쬐면 그야말로 걷잡을 새 없이 독들이 세로 가로 터져 나간다. 그런데 오늘은 바람이 좀 치는 게 독 말리기에 아주 좋은 날씨였다.” (황순원의 소설 ‘독짓는 늙은이’ 중에서)
울산 울주군 온양읍 외고산 옹기마을은 국내 최대의 옹기마을이다. 플라스틱과 스테인리스 용기가 넘쳐나고 아파트라는 주거 환경에서 장독대에 놓인 독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이곳은 예외다. 37가구 147명이 살고 있는 조그만 마을에 옹기사업 종사자가 40명, 지방무형문화재 옹기장이 8명이나 된다. 전국 옹기 생산량의 50% 이상을 만든다.
이곳이 옹기마을로 자리 잡은 것은 1957년. 경북 영덕에서 옹기를 만들던 고 허덕만 씨가 이곳으로 이주하면서부터다. 부산 피란길에 이곳의 기온이 따뜻하고 풍부한 질점토, 마을의 완만한 경사 구릉 등이 가마를 만들기에 제격이라고 판단해 눌러 앉으면서 자연스레 마을이 형성됐다.
여기에 6·25전쟁 이후 증가한 옹기 수요로 전국에서 옹기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1960∼1970년대에는 옹기장이 300여 명이나 됐다. 인근 부산에서 염장용 항아리로도 많이 팔려 나갔고 전북 군산까지 판로를 확대했을 정도다. 이후 1970년대 말 아파트와 플라스틱 그릇, 스테인리스 그릇이 대량 생산되면서 옹기장의 수가 지금 수준으로 급격히 줄어 명맥만 유지하게 됐다.
10월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의 제2행사장인 이 마을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부산울산 민자고속도로, 국도 14호선, 동해남부선 철도가 지나가는 마을의 곳곳은 요즘 각종 개발 공사가 한창이다. 옹기를 소재로 옹기마을지구(기존 옹기마을)와 옹기공원지구(옹기마을 북쪽 경작지)로 나눠 개발하는 ‘외고산 전통옹기마을 문화관광 자원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마을 마당에 각양각색의 배불뚝이 옹기 수백 개를 쌓아놓은 모습이나 흙을 산더미처럼 쌓은 야적장, 굴뚝에서 하얀 연기를 뿜으며 옹기를 구워내는 가마 등이 없다면 이곳이 옹기마을이라고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공사 움직임이 분주하다.
시골 마을로는 드물게 전선과 통신 설비 지중화 사업을 모두 마쳤고 철도변도 말끔히 정비했다. 마을 정비에 306억 원의 국비와 시·군비가 투입됐다. 슬레이트 지붕과 흙 가마, 옹기 야적장만 있던 이곳이 덕분에 많이 변했다. 옹기 교육과 체험장 역할을 하는 옹기아카데미와 세계 옹기와 국내 옹기를 전시하는 옹기문화관은 이미 완공됐다.
옹기역사관과 체험실로 구성된 옹기아카데미는 일반인들이 옹기 제작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주말이면 관광버스 3, 4대가 마을에 몰려오기도 한다. 역사관은 옹기를 만드는 과정, 옹기의 장점, 지역별 옹기 특성, 옹기의 역사 등을 살펴볼 수 있게 꾸며져 있다.
마을 정상부에 위치한 옹기문화관은 대형 항아리 모양의 독특한 구조물로 건축돼 마을의 상징성을 대변한다. 옹기조형광장과 야외전시장, 발효 음식관, 공방(工房)도 이미 완공됐거나 다음 달 문을 열 예정이다. 옹기아카데미 맞은편 공방에는 현재 세계 최대 규모의 옹기가 보관돼 있다.
쌈지공연장, 마을 안내 부스, 승용차 396대가 주차 가능한 주차장, 운동장, 옹기길 등도 다음 달 말 공사를 마칠 예정이다. 이 가운데 옹기길은 보행만 할 수 있는 옹기거리, 마을의 전형적인 풍경을 볼 수 있는 옹기골목으로 구분해 정비했으며 옹기거리와 골목 바닥재는 마을풍경과 어울릴 수 있도록 흙이나 다양한 옹기조각을 사용할 계획이다.
울주군도 문화관광과 소속 관광개발팀 전체를 이곳에 파견했다. 이유석 관광개발팀장은 “옹기엑스포를 100일가량 앞두고 옹기마을의 모든 하드웨어 작업은 마무리 단계”라며 “엑스포 개최 소식이 알려지면서 하루 100명 이상, 주말이면 300여 명의 관광객이 옹기를 구입하거나 옹기 제작 체험을 하러 온다”고 말했다.
윤희각 기자 toto@donga.com
■외고산옹기협의회 신일성 회장 인터뷰
높이 240cm 둘레 505cm
세계 최대의 옹기 곧 완성
기네스북에 등록 시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