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AP는 ‘스펙’이다? 아니다?

  • 입력 2009년 6월 30일 02시 56분


진실과 오해 들여다 보니

《요즘 서울 강남지역에는 ‘영어로 자녀 대학보내기’에 관심을 갖는 학부모가 많다. 남보다 월등한 영어실력으로 글로벌 전형, 국제학부 전형 등 수시모집에서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등 명문대학에 합격시키겠다는 것이다. ‘고려대, 연세대 글로벌 전형에서 반영한다더라’고 소문이 난 ‘AP(Advanced Placement·대학과목 선이수) 성적’을 따려는 학생도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급격히 늘고 있다. AP 전문 학원도 성업 중이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이런 ‘AP 열풍’이 혼란스럽기도 하다. 연세대는 2010학년도부터, 고려대는 2011학년도부터 각각 글로벌 전형 지원자격에서 AP 성적을 제외하겠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이다. 과연 국내 명문대학 진학을 위해 AP 공부를 해야 하는 걸까,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

고려대… 내년부터 전형요건서 ‘아웃’
연세대… 서류 평가에 일부 반영될 수도
서울대… 해외 고교 졸업자만 대상

○ AP란?

AP는 사실 미국 교육제도다. 미국 고교생이 대학 수준의 과목(37개 과목 중 선택)을 이수하고 비영리기관인 미국대학위원회(College Board) 주관의 시험을 치러 5점 만점에 4∼5점을 받으면 대학이 그 과목을 공식 취득 학점으로 인정해주고 대입전형에도 참고한다.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AP 성적을 요구하기 때문에 국내에서는 민족사관고가 정규수업으로, 각 외국어고가 방과 후 수업으로 AP 과목을 가르치고 있다. 시험은 매년 5월 한 차례 실시된다.

국내에서는 연세대가 2006학년도에, 고려대가 2008학년도에 각각 글로벌 전형 지원자격으로 AP 성적을 내걸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해외 대학에 유학가려는 민사고, 외고 국제반 학생들이 공부하던 AP를 국내 대학에 진학하려는 외고 국내반 학생과 일반고 최상위권 학생들도 공부하기 시작했다.

일반고 학생을 대상으로 2년째 AP 시험을 실시해 온 한미교육위원단은 “신청자가 지난해 50여 명이었는데 올해는 300여 명이나 됐다”고 말했다. AP 시험 대비반을 운영하는 세한아카데미의 김철영 원장도 “국내 대학에 지원할 학생들이 학원에 많이 오는 1∼5월이면 총 수강생이 150∼2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중 3분의 2가 국내 대학에 지원하는 학생들이다. 올해 한국외대부속외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이모 씨는 “국제반이 아닌데도 2학년 때는 반에서 절반 정도가 AP 시험을 준비했다”면서 “국내반 애들은 자격증 따듯 단기 학원을 다니고, 세 과목에서 5점 만점을 받는 걸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전했다.

대일외고 2학년인 딸을 둔 곽모 씨는 “엄마들은 토플 점수는 기껏해야 1, 2점차라 변별력이 없기 때문에 AP 성적이 있어야 가산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우리 딸도 다른 친구들처럼 토플 점수가 115∼116점만 나오면 AP 시험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했다. 딸이 한국외대부속외고 3학년인 김모 씨는 “최상위권은 1∼2점 차로 대학 입시 당락이 갈리기 때문에 AP뿐만 아니라 뭐든지 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엄마가 많다. 갖춰야 할 ‘스펙’이 무한대인 셈”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 AP를 둘러싼 논쟁

AP를 대학입시에 반영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지연 교육과학기술부 대학자율화팀 사무관은 “AP는 국내 제도가 아니기 때문에 해외에서 고교과정을 이수한 학생에 한해서만 대입 전형에서 인정해야 한다. 국내 대학, 특히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가 AP를 전형자료로 인정하게 되면 학생들이 또 다른 사교육을 받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옥식 한가람고 교장은 “학교에서 AP를 배우지 못한 일반고 학생들과 AP를 배운 자사고, 특목고 학생을 동일선상에 놓고 평가하는 건 입학사정관 전형의 취지에 어긋난다”면서 “일반고 1, 2학년 학생이 대학 과목을 배우려면 비싼 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AP 전문학원은 대개 과목당 한 달에 40만 원 정도. 쉬운 과목은 서너 달만 학원에 다니면 되지만, 어려운 과목은 더 오래 다녀야 한다. 학부모 김모 씨는 “그룹과외나 개인과외는 과외 강사 수준에 따라 달라 부르는 게 값”이라고 말했다.

반면 AP 전문학원인 세한아카데미의 김철영 원장은 “고교등급제가 인정 되지 않아 민사고 내신 1등급과 시골 학교 내신 1등급이 똑같이 취급받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국제적 기준에 맞춘 AP 성적이 내신 성적보다 변별력 있는 전형요소”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AP를 공부한 학생들은 대학 진학 후에도 쉽게 수업을 따라갈 수 있고 대학에서 배울 과목을 미리 공부해봄으로써 전공 적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AP 성적이 대학입시 지원자격에서 사라지더라도 서류 평가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입학처장이 밝힌 AP 성적 반영 여부

그렇다면 학생선발권을 쥐고 있는 대학들의 생각은 어떨까. 김영정 서울대 입학관리본부장은 “국내에서 고교를 졸업한 학생이라면 AP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해외에서 고교를 졸업한 학생의 경우에만 반영한다”고 잘라 말했다.

고려대는 올해까지만 AP를 자격요건 중 하나로 인정한다. 서태열 고려대 입학처장은 “토플 등 공인영어성적, 제2외국어 두 가지, AP 등 세 가지 중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셋 중 여러 가지를 제출한 학생이라도 가산점을 주는 게 아니라 ‘조견표’를 보고 그 학생에게 가장 유리한 것 하나만 골라서 점수화한다. 고려대는 내년부터 AP를 자격요건에서 뺀다.

연세대는 올해부터 AP를 글로벌리더 전형, 언더우드국제대학 전형 자격요건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서류 평가에서는 AP 성적이 일부 반영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태규 연세대 입학처장은 “서류 평가에선 일기장을 내도 반영할 수 있다. AP 성적도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단, 제출된 서류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기 때문에 세부 항목별 배점은 정해져 있지 않다고 밝혔다.

최세미 기자 luckyse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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