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명의 어린 넋 눈물속 위로
“10년 전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찍은 사진이에요.”
김청훈 씨(50)는 먼저 저세상으로 보낸 딸 혜지(당시 5세)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며 말했다.
29일 오전 11시 경기 화성시 서신면 백미리 수련원 터. 10년 전 ‘씨랜드 참사’로 유치원 어린이 19명의 목숨을 앗아간 컨테이너 건물은 사라지고 잡초만 무성한 가운데 씨랜드 희생자 10주기를 추모하는 작은 분향소가 차려졌다. 하얀 제단 위에 놓인 사진 속 아이들은 흰 망토를 두르고 색색의 별을 붙인 머리띠를 한 채 둘씩 짝을 지어 해맑게 웃고 있다. 부모들은 그 앞에서 죄인처럼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유족들은 한두 명씩 제단 앞으로 나와 향을 피우고 아이의 사진 앞에 하얀 국화를 바쳤다. 여섯 살 형민이를 잃은 어머니 신현숙 씨(44)는 “그날 ‘사랑해. 내일 보자’ 하고 보냈는데…”라며 다시는 보지 못하게 된 아들 사진을 붙잡고 한동안 향로 앞을 떠나지 못했다. 여섯 살 연수를 떠나보낸 어머니 김명화 씨(47)는 제단 주변에서 작은 풀꽃을 꺾어 왔다. 김 씨는 영정에 꽃을 바치며 “계란꽃(망초)이야. 우리 연수가 좋아했던…” 하고 말을 잇지 못했다.
매년 기일마다 이곳 사고현장과 아이들의 뼈를 뿌린 강원 강릉시 주문진을 함께 찾아온 유족들은 올해 10주기를 맞아 합동추모제를 마련했다. 화성시에 부탁해 땅주인의 양해를 구했고 천막과 제단 등 필요한 물품을 지원받았다. 아이를 잃은 뒤 한국어린이안전재단을 세워 어린이 안전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이경희 씨(55)는 “이제 좋은 매듭을 지어야 할 때라 생각해 유가족들이 뜻을 모아 추모제를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고의 상처는 아직도 깊이 남아 있다. 막내딸 수나를 화마로 보낸 허경범 씨(51)는 “대학생인 아들이 얼마 전 친구와 여행을 간다기에 못 가게 말렸다”며 “졸업여행 외에는 어떤 캠프나 수련회도 보낸 적이 없다. 사고 후 아이들을 어디 보내는 게 겁이 난다”고 충격이 가시지 않은 속내를 털어놨다. 사고 당시 음식점에서 일했던 김청훈 씨는 “좋은 일도 아닌데 워낙 유명한 사건이라 손님들 중 날 알아보는 사람이 많았다”며 “그게 너무 싫어서 대인기피증까지 생겼다”고 덧붙였다. 그는 수차례 직장을 옮겨야 했다.
헌화는 20여 분 만에 끝났다. 유족들을 비롯해 최영근 화성시장과 시 직원들, 경기도 직원들이 참여해 화마가 앗아간 19명의 어린 넋을 위로했다.
추모비 하나 세우지 못한 수련원 터는 10년간 방치된 채 텅 빈 수영장과 공터만 남아 휑뎅그렁했다. 최 시장은 “사유지이긴 하지만 유족들의 뜻에 최대한 맞추어 추모비나 기념관 건립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시 여섯 살인 딸 찬영이를 잃은 아버지 이상학 씨(45)는 아이들 사진 액자를 정리하면서 “다른 거 없이 1년에 한 번 올 때마다 벌초만이라도 되어 있으면 좋겠다. 아이들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도 그러기가 어려우니…”라며 무거운 발걸음을 돌렸다.
화성=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