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6·10항쟁 22주년 범국민대회에서 시위대가 곳곳에서 경찰을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됐다. 그동안 언론에는 경찰이 시위대를 강경 진압하는 장면이 주로 보도됐지만 경찰도 시위대로부터 폭행당한 사실이 이번에 밝혀졌다. 서울지방경찰청이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신지호 의원에게 제출한 동영상에 따르면 이날 일부 시위 참가자는 불법 도로시위를 막으려는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 하루 동안 전경 12명을 포함해 경찰 15명이 시위대로부터 두들겨 맞거나 진압 과정에서 부상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경찰은 이날 시위에서 24명을 붙잡아 이 중 23명을 불구속 상태로 수사하고 있다. 하지만 연행된 사람들은 대부분 단순 가담자로 나타났으며 적극적으로 폭력을 행사한 시위자는 검거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 참가자들은 오후 7시 반경 주변 교통상황을 정리하던 교통경찰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주먹을 휘둘렀다. 일부 참가자는 가져온 우산으로 경찰의 머리를 내리쳤다. 한 50대 교통경찰은 시위대에게 멱살이 잡힌 채 끌려 다녔다.
공식행사는 오후 10시쯤 끝났지만 일부 참가자는 오후 9시경부터 도로를 점거하며 불법 시위를 주도했다. 이때부터 4000여 명의 시위대와 경찰이 본격적으로 대치하면서 시위대의 폭력도 거칠어졌다. 경찰이 공개한 동영상과 사진 자료에 따르면 시위대는 경찰에게 유리병을 던지고 유독성 스프레이를 뿌렸다. 일부는 전경들을 붙잡아 발로 밟으며 집단으로 때리기도 했다. 적극적인 폭력 가담자들은 신원 추적을 막기 위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평화적인 시위를 당부하던 한 민간인은 시위대가 던진 물병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쓰고 있던 안경이 부서지기도 했다.
‘PRESS’라고 적힌 헬멧을 쓴 사람이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도 경찰 카메라에 잡혔다. 촬영기자로 보이는 듯한 사람은 경찰을 향해 촬영 기자재를 휘두르기도 했다. 신원이 불분명한 한 사람은 고정대가 부착된 캠코더로 경찰의 헬멧을 내리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경찰이 먼저 방패를 휘둘러 방어 차원에서 대응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 의원 측은 “최근 시위에서 인터넷 언론사 기자들이 폭력에 가담하는 경우가 간혹 있어 경찰이 대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 방송-인터넷, 경찰폭행 장면만 내보내
시위 다음 날인 11일 KBS, MBC, SBS 등 지상파를 포함한 대부분의 방송사는 10일 시위에서 전경들이 시위 참가자의 머리를 방패로 내리치는 장면을 일제히 주요 뉴스로 보도했다. 그러나 이들 방송사는 시위대가 경찰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은 거의 다루지 않았다. 경찰이 방패를 휘두르는 장면은 좌파 인터넷매체인 ‘민중의 소리’ 소속 기자가 촬영해 ‘경찰, 방패로 시민들 머리 가격’이라는 제목으로 홈페이지에 올렸다.
이에 대해 경찰 측은 “11중대가 도로에서 불법 점거하고 있는 시위대를 막는 과정에서 박모 소대장을 시위대가 붙잡아 얼굴 등을 집단 폭행하자 부대원들이 이를 구출했고 이후 부대원 2명이 폭행 시위자를 발견해 방패를 공세적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소대장은 시위 직후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으로 이송돼 치료를 받았다고 경찰은 밝혔다. 대다수 방송사는 경찰의 해명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시위대의 불법 폭력이 극심해진 오후 10시경부터 방패와 최루가스 등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좌파 인터넷매체들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 의원 측은 “좌파 성향의 인터넷매체들은 경찰이 자위권과 질서유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한 부분만 집중 촬영해 유포시켜 경찰이 선량한 시민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으로 여론을 조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정훈 기자 sunshade@donga.com
장윤정 기자 yunj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