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교육협의회 회장으로 취임한 이배용 이화여대 총장은 대교협 부회장, 사립대총장협의회 회장 등을 지낸 이력이 있어서인지 자신감이 넘쳤다. 취임식을 하루 앞둔 29일 이화여대 총장실에서 만난 그는 “어떤 공동체가 오래 유지돼 왔으면 이어가는 것도 있고 새롭게 추진하는 것도 있어야 한다”며 입시, 대학 자율화, 사회적 협의체 구성 등 여러 구상을 꺼내 놓았다. 사교육 대책을 둘러싸고 교육계 전반이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근본과 소통을 강조하며 대입 자율화를 지켜 나가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
대학평가때 인성-봉사 항목도 포함시켜야
고1내신 반영 안하면 공교육 불안해질 수도
―이 회장이 이끄는 대교협이 추구할 핵심 과제는 어떤 것인가요.
“입시문제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대교협으로 넘어 오면서 그동안 입시문제가 대교협의 중점 과제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물론 입시는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입시로 선발한 인재를 양성하고 교육하는 것도 대학의 임무인 만큼 우리 대학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대교협이 인재 양성 프로그램을 만들고 교수들의 연구 역량을 높이는 데 힘을 쏟아야 할 시기입니다. 대교협에 대한 기대가 예전보다 많이 커진 상황이어서 대교협 자체의 공신력과 사회적 위상을 높이는 것도 중요합니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을 것 같은데요?
“대교협은 1996년부터 대학 평가를 해 왔습니다. 최근에는 정부나 언론사, 세계적인 평가기관들에서도 대학 평가를 많이 하고 있죠. 그런데 평가의 지표들이 대학이 가야 할 방향을 모두 내포하고 있느냐 하는 문제를 본질적으로 짚어봐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너무 실적 위주로 흐르다 보니 대학 발전과 평가가 따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총장님들이 평가를 받아 본 경험을 공유하면서 ‘이런 지표를 넣으면 좋겠다’라고 건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인성교육이나 봉사 같은 지표를 넣으면 좋겠어요. 국내외 대학 총장들과 논의를 해 11월쯤에는 대교협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꼽은 평가지표들을 내놓겠습니다.”
―사교육 경감 대책을 놓고 한창 시끄럽습니다. 입시의 한 축인 대교협의 수장으로서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다른 분들이 하는 것에 대해 좋다 나쁘다 지적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대교협이 자체적으로 해 나가야 할 일들을 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다만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책을 발표하지 말고 대학과 소통하면서 입시문제를 풀어가자는 것이 저희 생각입니다. 사교육 문제도 초등학교 교장부터 중고교, 대학 관계자들이 모두 참여하는 교육협력위원회를 만들어서 대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학수학능력시험 과목 축소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모든 교육주체들이 함께 모여서 논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대교협 회장으로서 본질적인 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이를 하나의 담론으로 형성하고, 구체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법론을 구상하는 역할을 담당하겠습니다.”
이 총장은 입시나 사교육 대책을 논할 때 본질적인 측면을 소홀히 하다보니 현상적인 대책만 이어진다고 꼬집었다. 사회가 과정과 절차에 대한 인내심이 없어지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다.
“교육대책의 포커스는 학교가 정상화되고 충실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교육 자체가 나쁘다기보다는 사교육비가 너무 많이 들어서 고통이 커지고 학교가 부실해지는 측면이 있잖아요. 먼저 학교 교육이 충실해지도록 해서 나중에 자연스럽게 사교육이 없어지도록 하는 것이 이치입니다. 지금 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백년지대계인 교육을 위해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라는 원칙과 기둥을 세우는 일입니다.”
―사교육의 주범이라는 이유로 고교 내신을 개편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는데요.
“상대평가와 절대평가 모두 저마다 역사를 가지고 있죠. 제가 전문가가 아닌 이상 ‘몇 등급이 옳다’라는 식의 얘기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크게 보면 절대평가가 선진적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입시에 반영할 때 세부적인 내용을 좀 더 짚어 줘야 (절대평가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고교는 믿을 수 있는 내신 자료를 제공하고 대학은 이를 정확하게 분석한다는 신뢰도 쌓여야 하는 문제고요.”
―고교 1학년 내신을 대학 입시에서 제외하자는 논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교 1학년도, 2학년도 모두 공교육의 중요한 과정입니다. 고1 내신을 반영하지 말라는 것은 공교육을 불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대교협이 그동안 대학들의 입시안을 종합적으로 심사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대학마다 원하는 인재를 뽑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각 대학이 고교 내신의 학년별 반영비율을 어떻게 할지는 전적으로 대학 자율에 맡겨야 합니다. 대학마다 반영비율을 달리하려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물론 공교육에 대한 정서나 원리를 무너뜨리는 입시안이 나와서는 안 되겠지요.”
―정부의 대학 지원 노력을 체감할 수 없다는 대학들의 불만도 적지 않던데요.
“재정 지원이 약한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일각에서는 ‘대학 진학률이 너무 높다, 좀 줄이자’라는 대책을 내놓기도 하는데 그러면 안 됩니다. 국민의 84%가 대학에 진학하는 점을 감안해서 초중고교에 지원하는 것처럼 대학에도 지원을 쏟아야 합니다. 그래야 등록금도 조정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고등교육재정교부금, 사학육성특별법 등 대학 교육에 필요한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이 회장은 청년 실업에 대해서도 대교협이 적절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기업 수장과 대학 총장 간의 협의회를 만들 계획입니다. 산학연은 취업 분야에서도 원활하게 이뤄져야 합니다. 대학은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키울 수 있도록 실천하고, 또 대학이 키운 인재들이 우수하다는 점을 직접 기업에 설득해야죠. 기업도 대학에 대한 투자와 지원을 늘려서 우수한 인재를 키우는 데 일조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야 우리나라에서 또다시 유엔 사무총장이 배출될 수 있을 정도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습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이배용 회장:
―1947년 서울생
―1969년 이화여대 사학과 졸업
―1971년 이화여대 석사
―1984년 서강대 박사(한국사 전공)
―1985년∼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2006년 8월∼ 이화여대 총장
―2008년 한국사립대총장협의회 회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