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오후 서울 마포구청 직장어린이집. 영어선생님과 어린이들이 ‘도담뜰’이라는 도서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았다. 선생님이 그림을 들고 “Look at the snail. It is going under the stick(달팽이를 봐. 나무토막 아래로 가고 있어)”이라고 설명하자 아이들도 큰 목소리로 따라했다. 아이들은 자기가 먼저 발표하겠다며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이날은 해외 입양인 영어선생님 임효주 씨(30·여)가 30일 출국을 앞두고 마지막 수업을 했다.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 속에 파묻혀 석 달 동안 시간 가는 줄 몰랐다는 임 씨는 아이들이 직접 만든 깜짝 카드를 선물로 받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해외 입양인 영어교실
1979년 태어나 이듬해 덴마크로 입양을 간 임 씨는 4월 9일 한국을 찾았다. 지난해 친부모와 만난 뒤부터 종종 방문했지만 이번에는 다른 목적도 있었다. 원어민 강사에게 영어를 배울 기회가 부족한 어린이들의 영어선생님으로 변신하기로 한 것. ‘입양’이라는 상처를 ‘나눔’으로 승화시킨 임 씨의 마음은 큰 호응을 얻었다. 영문학을 전공한 임 씨의 영어 실력은 뛰어났고 고국에 대한 애정도 커 아이들도 곧잘 따랐다. 임 씨 역시 “영어 강의와 한국문화 모두 내게는 큰 도전이었지만 한국인들의 따뜻한 마음 덕분에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며 “덴마크로 돌아가더라도 한국의 소리, 향기, 얼굴을 모두 기억하고 꼭 다시 방문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포구는 홀트아동복지회와 협약을 맺고 해외 입양인들을 초청해 ‘마포 꿈나무 영어교실’을 열고 강사료와 홈스테이 숙식비를 지원하고 있다. 일단 4월부터 시범적으로 관내 어린이집 3곳에서 5∼7세 어린이들을 상대로 임 씨가 수업을 진행했다. 도화어린이집 고경희 원장은 “그동안 비용 문제 때문에 원어민 강사를 직접 채용하기는 어려웠다”며 “게임과 퍼즐을 통해 즐겁게 영어를 가르치다 보니 아이들도 즐거워했고 학부모들의 만족도도 높았다”고 밝혔다. 구는 앞으로 매달 5명씩 초청해 관내 어린이 1200여 명의 영어선생님으로 나설 수 있게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임 씨는 마포구 염리동 권자경 씨(48·여)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며 한국 생활을 했다. 마포구는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에서 편히 지내며 다양한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홈스테이 가정도 모집했다. 권 씨는 “한국인들만의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며 “중학교 3학년인 딸과도 좋은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임 씨도 “강원 속초로 함께 여행을 갔을 때 내가 이 가족의 일원인 듯한 따뜻함을 느꼈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 구민과 해외 입양인이 상생
시범 운영이 좋은 성과를 거두자 마포구는 사업 확대에 나섰다. 해외 입양인들과 구민들이 서로 지속적인 도움을 나눌 수 있도록 ‘해외 입양인 네트워크’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홈스테이를 받겠다고 신청한 사람이 15명에 이를 정도로 구민들의 호응도 크다. 7월에는 한국어교실, 마포투어 등의 모국체험 행사를 열고 명예구민증도 수여할 예정이다. 신영섭 마포구청장은 “해외 입양인들은 고국을 방문해 좋은 추억을 쌓고 구민들도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며 “해외 입양인들이 한국 사회와 지속적인 연이 닿을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촘촘히 구축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