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비록 죽었지만 남편의 다른 부분들은 손톱 하나까지 다 살리고 싶었어요.”
30일 오후 경기 용인시의 자택에서 만난 곽선영(가명·41) 씨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눈물도 다 말라버렸다”던 그의 눈에서 연방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곽 씨는 지난달 23일 남편 장만기 씨(43)를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냈다. 장 씨가 ‘임상적 뇌사’로 판정 받은 지 꼭 일주일 만이었다. 한국가스공사 경영관리팀 과장으로 늘 성실했던 남편의 죽음은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곽 씨는 “한 달 전 건강검진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며 울먹였다.
남편은 11일 귀갓길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었고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곧바로 수술을 받았다. 대뇌동맥의 폐색으로 인한 협착성 뇌경색이었다. 닷새 뒤인 16일 의사는 곽 씨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전했다. 그때 곽 씨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2월 김수환 추기경 선종 때 남편이 선뜻 장기기증을 신청했던 기억을 떠올리고서야 “죽음을 인정하고 장기기증을 생각하시라”는 말인 줄 알았다.
장기기증의 소중함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곽 씨의 일이 되고 보니 결정이 쉽지 않았다. 기다리기만 하면 남편은 언제든 돌아올 것 같았다. 곽 씨는 “하루, 이틀, 열흘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지만 남편을 놓고 싶지 않았다”며 “이기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그때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설득과 조언이 마음을 움직였다. 곽 씨의 동생은 “어차피 매형의 모든 것을 떠나보내야 한다면, 그 일부만이라도 이 세상에 남겨 함께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누나를 위로했다. 곽 씨는 일주일간 움직이지 않는 남편의 곁을 지키며 고민했다.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생각하며 속병도 앓았다.
그러다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23일 장 씨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이틀 동안 심장, 간장, 좌우신장은 물론 좌우각막까지 총 6개의 장기를 적출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심장은 43세 여성에게, 간장과 오른쪽 신장은 64세 남성과 53세 여성에게, 각막은 42세 남성과 70세 할머니에게, 왼쪽 신장은 39세 여성에게 기증됐다. 6명의 환자가 새 생명을 얻었다.
곽 씨는 수술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제가 얼마나 옹졸했는지 깨달았어요. 결정을 못하고 일주일을 머뭇거리는 동안 남편의 폐와 췌장이 더 상해 이식을 못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남편에게 오히려 더 미안하다는 자책감마저 들었습니다. 지금은 누군가의 몸에서 남편의 심장이 뛰고 남편의 눈이 세상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큰 힘이 되고 마음이 뿌듯합니다.”
용인=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