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명에 새 생명 안긴 장만기씨 부인 ‘번민의 7일’

  • 입력 2009년 7월 1일 02시 57분


“뇌사 남편 깨어날 것만 같아
장기기증 결단 망설였지만
대기자 간절함 보니 눈물이…”
김추기경 선종때 기증 서약
“남편 심장 어딘가에서 뛰니
죽어도 떠난게 아니겠지요”

“뇌는 비록 죽었지만 남편의 다른 부분들은 손톱 하나까지 다 살리고 싶었어요.”

30일 오후 경기 용인시의 자택에서 만난 곽선영(가명·41) 씨는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제 눈물도 다 말라버렸다”던 그의 눈에서 연방 굵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곽 씨는 지난달 23일 남편 장만기 씨(43)를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보냈다. 장 씨가 ‘임상적 뇌사’로 판정 받은 지 꼭 일주일 만이었다. 한국가스공사 경영관리팀 과장으로 늘 성실했던 남편의 죽음은 너무도 갑작스러웠다. 곽 씨는 “한 달 전 건강검진에서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며 울먹였다.

남편은 11일 귀갓길 엘리베이터에서 갑자기 정신을 잃었고 분당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곧바로 수술을 받았다. 대뇌동맥의 폐색으로 인한 협착성 뇌경색이었다. 닷새 뒤인 16일 의사는 곽 씨에게 “마음의 준비를 하시라”고 전했다. 그때 곽 씨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2월 김수환 추기경 선종 때 남편이 선뜻 장기기증을 신청했던 기억을 떠올리고서야 “죽음을 인정하고 장기기증을 생각하시라”는 말인 줄 알았다.

장기기증의 소중함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곽 씨의 일이 되고 보니 결정이 쉽지 않았다. 기다리기만 하면 남편은 언제든 돌아올 것 같았다. 곽 씨는 “하루, 이틀, 열흘이 지나도 차도가 없었지만 남편을 놓고 싶지 않았다”며 “이기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그때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의 설득과 조언이 마음을 움직였다. 곽 씨의 동생은 “어차피 매형의 모든 것을 떠나보내야 한다면, 그 일부만이라도 이 세상에 남겨 함께하는 것이 더 좋지 않겠느냐”고 누나를 위로했다. 곽 씨는 일주일간 움직이지 않는 남편의 곁을 지키며 고민했다. 중학생, 초등학생인 두 아이를 생각하며 속병도 앓았다.

그러다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23일 장 씨는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이틀 동안 심장, 간장, 좌우신장은 물론 좌우각막까지 총 6개의 장기를 적출하는 대수술을 받았다. 심장은 43세 여성에게, 간장과 오른쪽 신장은 64세 남성과 53세 여성에게, 각막은 42세 남성과 70세 할머니에게, 왼쪽 신장은 39세 여성에게 기증됐다. 6명의 환자가 새 생명을 얻었다.

곽 씨는 수술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느꼈다고 했다.

“제가 얼마나 옹졸했는지 깨달았어요. 결정을 못하고 일주일을 머뭇거리는 동안 남편의 폐와 췌장이 더 상해 이식을 못하게 됐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남편에게 오히려 더 미안하다는 자책감마저 들었습니다. 지금은 누군가의 몸에서 남편의 심장이 뛰고 남편의 눈이 세상을 보고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큰 힘이 되고 마음이 뿌듯합니다.”

용인=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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