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도시권이 세계적인 메가시티리전(MCR·광역경제권)과 경쟁하려면 소(小)지역주의에서 벗어나 글로벌 인재와 자본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곳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동아일보는 ‘메가시티, 미래의 경쟁력’ 기획 시리즈의 하나로 국내 MCR의 경쟁력 강화 전략을 모색하기 위한 좌담회를 가졌다. 좌담회에는 이번 시리즈를 위해 해외 동행 취재한 김제국 경기개발연구원 수도권정책센터장과 김은경 책임연구원, 박영훈 모니터그룹 부사장을 포함해 권원용 서울시립대 도시행정학과 교수, 김원배 국토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참석했다.》 글로벌 인재-자본 넘나드는 ‘국가대표 MCR’ 육성하자 ―세계가 국가 단위 경쟁에서 MCR 경쟁으로 돌아선 배경은 무엇인가. △김원배=세계화로 지구가 하나의 커뮤니티로 변해가고 있다. 아래로의 분권화 경향도 나타난다. 이런 상황에서 MCR로의 집적이 심화되고 있다. 유럽이 대표적이다. 유럽연합의 출범으로 국가를 초월하는 ‘슈퍼 내셔널’ 조직이 등장하고 도시끼리의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앞으로 다수의 MCR가 연합하는 문제가 중요해질 것이다. △김제국=세계화의 동력은 금융자본, 정보통신과 교통혁명이다. 19세기는 ‘80일간의 세계일주 시대’였다. 지금은 3일이면 충분하다. 과거에 80곳의 도시를 거쳤다면 지금은 3곳만 필요한 셈이다. 각 대도시권은 금융자본의 거점을 끌어오기 위해 경쟁한다. 최근 방문한 일본 도쿄는 10년 전과 너무 달랐다. 도심 초고층 빌딩은 금융기관이 속속 들어서 미국 뉴욕 맨해튼의 한복판에 와 있는 듯했다. △권원용=세계경제의 글로벌화로 인해 1990년대 쇠퇴했던 도심이 부활하고 대도시권이 국가대표 선수로 인식되고 있다. ―동아일보 미래전략연구소와 모니터그룹이 세계 20개 MCR의 경쟁력을 평가한 결과 한국 MCR는 글로벌 역량이 꼴찌 수준이었고 미래 성장잠재력도 뒤떨어졌다. △박영훈=성장의 플랫폼이 달라져야 한다. 과거 40∼50년간 고도성장을 할 때는 잘 훈련된 노동력을 바탕으로 선진국 기술을 빠르게 복사하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으로 성장했지만 이제는 따라할 상대가 없으니 ‘혁신 리더’가 돼야 한다. 서비스업 등 지식기반 산업이 성장동력이 될 수밖에 없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대도시권에 모일 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산업 클러스터가 형성될 수 있다. △김은경=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성(Openness)이 부족하다. 외국인이 기업이나 정부 조직의 고위층이 될 수 없는 문화다. △김제국=대도시권 경쟁은 돈과 인재를 끌어오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은 오히려 인재를 잃고 있다. 미래에 어떤 인적 자원이 남아 있을까 두렵다. △박영훈=돈과 사람 중에서 우선순위는 사람이다. 인재의 질이 나쁘면 자본도 들어오지 않는다. 한국은 인적자원 순유출국이다. 인도도 ‘브레인 드레인(인재 유출)’을 겪고 있지만 본국과 세계에 나가 있는 고급 인재들의 훌륭한 네트워크가 있다. 해외에서 공부한 사람 중에서 본국으로 돌아오는 점이 다르다. △김원배=중국은 2, 3년 전에 ‘국적 불문, 인종 불문, 자본 불문’의 3불(不) 정책을 썼다. 우리는 타지 사람이 동네에 들어오는 것조차도 두려워한다. 다른 문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받아주는 관용(tolerance)이 부족하다. 스포츠에서 배워야 한다. 축구, 야구, 배구 등 프로배구에 외국인 선수가 들어오고 국내 스타들도 해외로 나갔다가 들어오지 않느냐. 스포츠에서처럼 인재들이 양쪽으로 자유롭게 흐르는 ‘혼류 모델’을 만들 수 있다면 글로벌 전략이 빈말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권원용=외국인을 위한 기업 환경이 제일 낫다는 경인권도 외국과 비교하면 굉장히 열악하다. 5대 MCR 거점도시의 인프라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게 끌어올리는 노력이 필요하다. ―균형발전 정책에 대한 논란이 많다. △김원배=도시화 시대에는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집중됐지만 세계화의 시대에는 도시가 도시의 인구를 흡수하고, 큰 도시가 작은 도시를 빨아들이는 도시 간 인수합병(M&A)이 나타난다. 일본은 도쿄에서 오사카를 한 시간에 가도록 만들려고 한다. 이렇게 되면 중간도시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균형발전 정책을 추진한 것은 시대착오였다. 도시 계획가의 환상과 지역 기득권층의 개발에 따른 지대 추구가 비생산적인 경쟁을 양산한 것이다. △권원용=국가 균형발전은 이미 늦었다. 한국의 도시 인구 비중이 지난해 90%를 넘어 사실상 도시화가 종언됐다. 전통적인 의미에서 농촌에서 도시로 인구가 이입되는 도시화는 끝난 것이다. 농촌 인구가 바닥이 나서 도시로 유입될 자원이 없다. 이미 후기 도시화의 현상인 노령화, 인구 감소, 저(低)출산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에 혁신도시, 기업도시를 만들면 인구가 어디서 오겠는가. 이제는 삶의 질과 장소의 질을 높여 품격이 있는 대도시권을 만드는 질적인 성장이 필요하다. △김원배=전체적으로 동의하지만 현실적으로 균형발전 논리를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다. 정치 논리와의 타협도 필요하다. 지금까지 균형발전 논리가 n분의 1의 논리였다면 이제는 기회 균등에 입각한 균형이 필요하다. 삶의 질, 교육 등 최소한의 공통분모를 만들어주고 경쟁해서 격차가 벌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균형발전의 대안은 무엇인가 △김은경=균형발전보다는 지역 격차 완화 등의 현실적인 정책 프레임을 제시해야 한다. 영국 정부의 지역개발 정책의 목표는 지역 간 성장률 격차를 줄이는 것이다. 낙후지역 지원 정책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모두 똑같아지는 동일한 결과물을 얻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경쟁을 통한 지원이 바람직하다. 교육, 의료, 복지 등 최소한의 삶의 질은 국가가 책임지고 그 밖의 영역에서는 지역 간에 경쟁해야 한다. 지역 스스로 독자적인 차별화 전략도 만들어야 한다. 예컨대, 고부가가치 농업이 필요한 지역이 공장이 없다고 하소연하는 식으로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만들 수 없다. △권원용=선진국에서는 지역 격차를 실업률로 비교한다. 한국에서는 지역 격차 해소를 자산 격차, 부동산 격차로 본다. 자본(資本)주의가 아니라 ‘지본(地本)주의’인 셈이다. 이런 의식을 버리지 않는다면 개발이익을 어떻게 나누느냐는 균형발전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다. ―MCR의 ‘컨트롤타워’는 어떻게 되나. △박영훈=세계 MCR의 거버넌스는 크게 정부주도형과 탈정부주도형의 2개 모델로 나눌 수 있다. 한국은 경제 발전단계를 볼 때 탈정부주도형이 맞다. 하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성숙한 시민사회 모델이 없다는 점이 약점이다. △김원배=광역 거버넌스는 영국 지역개발청(RDA) 모델처럼 중앙정부가 개입하는 구조로 가다가 지역의 정치적 대표성을 담아내는 2단계 접근법이 필요하다. 사회적 합의도 이끌어 내야 한다. △김제국=한국의 주민 참여는 여전히 형식적이다. 정책이 소수에 의해 결정되고 국민의 동의를 이끌어 내지 못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너무 빨리 가려고 국민의 동의를 얻어내는 절차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차별화된 지역 발전 전략과 지역 간 경제적 통합의 해법은 무엇인가. △김원배=경인권은 서울이라는 핵심도시가 구심력을 발휘해 권역 전체가 보완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부울경권(부산 울산 경남)은 부산의 구심력이 약하다. 부산 울산 경남을 묶어 MCR를 설정했지만 실질적인 상호 보완관계나 네트워킹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 문제의 해법은 경인권 수준의 광역 교통네트워크를 형성하는 일이다. 서로 오가면 주고받을 것이 생기고 인적교류와 연구개발(R&D)도 협력할 수 있다. 시민사회의 참여를 강조하면서 기업이나 자본의 역할을 터부시하는 것도 현실을 무시하는 일이다. MCR 발전에 대기업, 중소기업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권원용=소지역주의의 아집이 갈등을 부추긴다. 중앙정부가 일종의 후견인 역할을 하면서 지방 분권을 과감하게 해야 한다. 행정구역 개편을 포함한 중앙과 지방의 분담체계를 확실하게 하고 행정 권한을 지방으로 이양해야 한다. 지방 소득세 등 지방 재원을 마련해 지역이 독자적인 자부심과 개성을 갖고 글로벌 경쟁을 할 수 있도록 정책을 펴야 한다. △김은경=규제, 조세체계, 예산 등 제도적 기반이 없으면 글로벌 MCR를 육성하기 어렵다. 5∼10년 성장을 이끌어갈 거버넌스 구조를 만들어 지역에 권한을 주고 책임도 물을 수 있어야 한다. 중앙정부는 심판 역할을 하면 된다. <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