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로 보내는 희망편지]금융계 큰 별되고 싶은 박찬희 군

  • 입력 2009년 7월 6일 02시 57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밸류자산운용 사무실에서 박찬희 군(왼쪽)과 이채원 부사장이 양손으로 하트 표시를 만들고 있다. 이 부사장은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게 꿈인 박 군에게 금융인이 되기 위한 조언을 해준 뒤 장학금 100만 원을 “너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며 전달했다. 김동주 기자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한국밸류자산운용 사무실에서 박찬희 군(왼쪽)과 이채원 부사장이 양손으로 하트 표시를 만들고 있다. 이 부사장은 금융업계에서 일하는 게 꿈인 박 군에게 금융인이 되기 위한 조언을 해준 뒤 장학금 100만 원을 “너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며 전달했다. 김동주 기자
지금 제 손엔 통장 한 개…
키워주신 할아버지-할머니께

100배로 효도하기 위해
통장 100개를 만들 겁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인천 대헌중 2학년 박찬희(14)라고 합니다. 뵙게 되어 영광이고요. 저는 제 꿈을 금융업 쪽으로 정하고 학교를 다니고 있습니다. 나의 꿈을 키우기 위해 아직은 보잘것없지만 나만의 통장을 하나 소중하게 갖고 있습니다. 돈 관리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공부를 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저도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돼 저 같은 아이들과 만나 좋은 얘기를 해주고 싶습니다.

저는 부모님과 같이 살지 않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형과 살고 있습니다. 평범한 집과는 다르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코피를 흘리는 일이 잦고 감기에도 자주 걸리던 저를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병원까지 걸어 다니시며 키우셨어요. 나중에 커서 할아버지 할머님께 백배 천배 효도하고 싶습니다.

저에게는 금융업계에서 일하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저를 위해 헌신하는 어른들에게 보답하고 싶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공부를 하다 보면 저의 통장 수도 1개에서 100개까지 늘어나지 않을까요. 선생님, 제가 금융업에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꿈을 품은 것만으로 넌 성장+가치株”▼
‘가치투자’전문가 이채원 한국밸류자산운용 부사장
“커뮤니케이션이 중요… 사소한 것도 자꾸 물어보렴”

“증권회사는 처음 와봤지? 여기는 자산운용 회산데 무슨 일을 하느냐면….”

지난달 27일 오전 11시 서울 여의도 한국투자증권 한국밸류자산운용 사무실. 금융권에서 일하며 돈을 많이 벌어 할아버지 할머니께 효도를 하고 싶다는 박찬희 군이 이채원 부사장(45)을 만났다. 이 부사장은 1998년 국내 최초의 가치 투자펀드인 ‘동원 밸류 이채원1호’를 만들었다. 가치주들은 처음에는 빛에 가려져 있었지만 2000년부터 6년 동안 누적수익률 435%를 기록하는 등 이 부사장은 탁월한 분석력과 종목 선정으로 국내 가치투자의 일인자로 발돋움한 인물. 여의도 증권가에서는 ‘한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린다.

찬희의 고민은 금융권에서 일하고 싶은데 성적은 얼마나 돼야 하는지, 어떤 대학을 졸업하고 무슨 전공을 공부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 이 부사장의 입에서 가치투자,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주식, 모멘텀 등 투자용어들이 나오자 찬희는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을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

“근데, 가치투자가 정확하게 뭔가요?”

멈칫한 ‘대가’는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중학생이 이해하기 쉬운 말로 한 차례 강의를 시작했다. “정보기술(IT) 분야가 전망이 좋으면 반도체 주식이 오를 것 같잖아? 그러면 투자자들이 반도체 주를 사는 게 모멘텀 투자야. 하지만 가치투자는 정반대지. 싸면 사고 비싸면 팔고, 즉 실제가치는 2만 원인데 거래는 1만 원에 되고 있는 거야. 그러면 사는 거지. 가격과 가치의 괴리를 보고 사는 거지. 1만 원에 샀다가 2만 원이 될 때까지 기다리는 거지. 그래서 지겹고 외롭고 고통스럽지.”

듣고 있던 찬희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말했다. “금융업은 종류가 많을 것 아니에요? 저는 이런 투자는 골치가 아파서 그냥 은행에 가보면 창구에서 상담하는 사람 말고 뒤에 앉아서 쳐다보는…. 그런 높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 부사장은 “상담창구 뒤에 있는 사람은 2년 전에는 그 앞에 앉아 있었거든. 대리에서 승진을 하고 뒤로 간 거야. 처음부터 관리자가 될 수는 없어”라고 웃었다. 그는 “금융권 내에서도 은행, 증권, 보험, 자산운용 등은 분야가 다 달라서 자신의 적성 등을 잘 고려해야 돼”라며 “영업이 맞으면 보험 쪽을, 분석력이 있으면 애널리스트를 선택할 수 있지”라고 설명했다.

“지금 찬희의 고민이 많은 것도 빠른 편이거든.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벌써 본인이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반 이상 꿈을 이뤘다고 봐. 난 주식의 ‘주’자도 모르고 입사해서 꿈을 찾은 게 32세 때였어. 그저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멋있어서 회사원이 되고 싶었지. 내가 베팅은 감각이 있는데 찬희는 열심히 공부하면서 진로는 천천히 생각하면 돼.”

조손가정에서 자란 찬희는 몸이 아픈 할아버지 때문에 의사가 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금융전문가가 되고 싶어졌다고 했다.

“찬희는 성장주에다가 가치주야. 자꾸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중요하니까 주변에 사소한 것도 물어봐야 돼. 나한테도 언제든지 전화를 해도 괜찮아.”

헤어지기 직전 이 부사장은 찬희에게 장학금을 건넸다. 봉투에는 가치투자의 대가가 앞으로 ‘찬희’라는 ‘가치주’를 위해 투자한 5만 원권 20장이 들어 있었다.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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