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총장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중도 사퇴한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의 퇴임식이 열린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청사 6층 소회의실 앞 복도. 퇴임식이 시작되기 10분 전인 오전 10시 20분부터 검찰 직원 20여 명이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퇴임식장 주변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미리 와 있던 몇몇 기자들과는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퇴임식은 천 지검장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열린다고 사전 공지가 돼 있었다.
오전 10시 35분 같은 층에 있는 검사장실에서 모습을 드러낸 천 지검장은 소회의실 앞에 서 있던 기자들을 보고 미소를 지으며 “미안해요”라고 말한 뒤 곧장 퇴임식장으로 들어갔다. 출입이 통제된 퇴임식장에는 서울중앙지검 1, 2, 3차장과 부장검사 25명, 과장 16명 등 모두 50여 명의 간부들만 참석했다. 불명예 퇴진하는 마당에 부하 검사 및 직원들 앞에 서기가 쉽지는 않았던 탓이었다. 천 지검장은 이후 기자실에 배포한 퇴임사에서 “24년간 몸담았던 정든 검찰을 떠나고자 한다. 제가 그동안 검사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께서 베풀어 주신 한없는 성원과 사랑 덕분이었다”며 감사의 뜻을 밝혔다. 이어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국민 여러분과 검찰 조직에 심려를 끼치게 된 점에 대해 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모든 것이 제 부덕의 소치다”라고 언급했다. 천 지검장의 퇴임사는 불과 400여 자로 짤막했다. 여느 검찰 간부들처럼 후배들에게 남기는 당부의 내용도 없었다.
퇴임식은 8분 만에 끝났다. 천 지검장은 간부들과 함께 같은 층에 있는 브리핑룸으로 곧장 이동해 서울중앙지검 부부장과 평검사, 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했다. 악수를 한 검사들은 브리핑룸을 빠져나왔고, 악수가 끝나자 복도에 대기 중이던 부장급 이상 간부들이 이곳으로 들어가 천 지검장과 기념촬영을 했다. 대강당에서 모든 검사와 직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성대하게 열리는 종전의 퇴임식과 달리 소회의실에서 비공개로 열린 퇴임식도 이례적이었지만, 기념촬영을 청사 현관 앞이 아닌 실내에서 한 것도 외부 여론을 의식한 것이었다.
오전 11시 천 지검장의 마지막 떠나는 모습을 배웅하기 위해 1층 현관에 부장검사들이 도열했다. 하나같이 입을 굳게 다문 채 침통하고 착잡한 표정들이었다. 2분쯤 뒤 천 지검장이 취재진 수십 명이 대기하고 있는 1층 현관문으로 모습을 드러내자 대기하고 있던 검찰 간부들이 일제히 박수를 쳤다. 뒤따르던 1, 2, 3차장과 악수를 한 천 지검장은 취재진과 간부들을 잠시 둘러본 뒤 “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서둘러 승용차에 몸을 실었다.
떠나는 천 지검장과 보내는 검찰 간부들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갑자기 굵은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천 지검장을 태운 승용차는 간부들의 박수 소리를 뒤로한 채 빗속으로 사라졌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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