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엄친아, 방학 때 뭐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7월 24일 03시 00분




초중고 우등생 5명 엿보기

‘아무도 2등은 기억해 주지 않는다’는 문구는 1등에 근접했지만 1등에는 올라보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씁쓸함을 느끼게 한다. 하지만 어쩌랴, 그것이 현실인 것을. 세상이 매정하게 느껴지겠지만 결국 내가 1등이 되는 수밖엔 없다. 그런데 1등은 왠지 ‘비법’을 숨기고 있을 것 같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열심히 자율학습을 하다가도 가끔 1등 친구를 곁눈질해 본다. 그나마 옆에 보이면 다행인데 방학 때는 궁금함이 더해진다. 그래서 동아일보가 대신 나서서 1등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와 ‘엄친딸(엄마 친구 딸)’ 그리고 그 엄마들의 여름방학을 살짝 엿봤다. 노력하는 세상의 수많은 ‘2등’을 위해.

○ 1등 모티브를 찾는다…휘문고 2학년 유제국 군

서울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 2학년 15반 유제국 군(18)은 방학 바로 다음 날인 17일 서울대 화학과를 찾았다. 1학년 때 반에서 1등을 했고 2학년 때도 줄곧 상위권을 유지하는 유 군의 꿈은 서울대 진학. 그래서 이번에 서울대를 ‘내가 다닐 대학’이라고 ‘찜’할 계획이다. 옛날 같으면 평소 사용하던 연필과 지우개를 교정에 묻고 오겠지만 요샌 그런 식으로 촌스럽게 안 한다더라.

유 군은 자유로운 캠퍼스, 활기찬 모습의 형과 누나들, 화학과의 실험기기와 장비 등 서울대 마크가 붙은 모든 것을 마음에 담았다. 하나하나가 모두 여름방학 강도 높은 공부를 소화해 내기 위한 동력이 된다.

이날 유 군은 단순히 학교를 둘러보는 것 외에도 이 분야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김병문 서울대 화학과 교수를 만나 자신의 적성과 희망, 화학 분야의 전망 등 1시간 동안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김 교수를 만난 뒤 유 군의 ‘공부 열의’가 최고조에 올랐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사실 김 교수와의 만남은 어머니 유진희 씨(49) 역할이 컸다. 연구 시간도 빠듯한 서울대 교수가 고등학생의 면담 신청을 쉽게 받아줄 리 없지 않은가. 유 씨가 주변 지인들을 통해 ‘연결고리’를 찾아내는 끈질긴 노력을 펼친 결과다. 유 씨는 “말을 강가까지 끌고 갈 수는 있어도 물을 강제로 먹일 순 없다”며 “제국이를 책상에 억지로 앉혀 놓을 수는 있겠지만 진정으로 공부할 수 있는 모티브를 주기 위해 교수님을 어렵게 섭외하게 됐다”고 말했다.



여름방학을 견뎌 낼 힘을 얻은 유 군은 올여름 ‘하드 스터디’를 할 예정이다. 우선 8월 1일까지는 오전 10시 50분∼낮 12시 20분 학교에서 수리 논술을 공부한다. 다른 학교에서는 주로 3학년들이 듣는 과정이지만 휘문고에서는 서울대 진학을 노리는 2학년 학생들에게도 이 강의를 개설해 미리 공부하도록 하고 있다. 과학탐구 영역을 보충하기 위해 인터넷 강좌를 수강할 계획이며, 학원은 언어(주1회 3시간), 수리(주2회 3∼4시간), 외국어(주1회 3시간)를 다니기로 했다.

정신 수양도 중요하기 때문에 7월 말이나 8월 초에는 북한산 금산사에서 템플 스테이에 참여할 계획이다. 조급해하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져야 공부도 더 잘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현직 의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서울시립아동병원 등 병원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봉사활동에도 참여할 생각이다.

글=김기용 기자 kky@donga.com
디자인=공성태 기자 coonu@donga.com




■서울 성심여고 2학년 이민경 양
‘인강’ 몰입
텝스-수리 완전정복 도전

서울 성심여고(용산구 원효로4가) 2학년 5반 이민경 양(17)의 올 여름방학 계획표에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정들로 빼곡하다. 민경이의 목표는 텝스(TEPS)와 수능 수리영역 정복. 그의 1주일 시간표는 마치 학교 시간표를 보듯 1시간 혹은 2시간 단위로 텝스와 수리영역을 정조준하고 있다.

민경이는 학원을 전혀 다니지 않는다. 대신 온 가족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만든 방학 계획표와 EBS 수능강의, 강남구청 수능 인터넷방송이 학원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정밀한 시간표대로 집중해 움직이다 보면 방학이 끝날 무렵 자랑스러운 성과물이 눈앞에 보일 것이라는 게 민경이의 설명.

민경이의 방학 전략은 이른바 ‘한 놈만 패는’ 선택과 집중이다. 지난 겨울방학에도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을 목표로 삼아 효과를 톡톡히 봤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EBS와 강남구청 인터넷 방송의 강의를 100개 이상 수강했다. 그러다 보니 고전문학과 현대문학은 더 손 댈 필요가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끝냈다.

이때에도 온 가족이 참여했다. 아버지는 민경이가 공부할 분야의 인터넷 강의를 미리 살펴보고 강사의 강의 스타일이 민경이와 맞아 떨어지는 것을 먼저 골랐다. 어머니는 고2 여름방학 때 어떤 과목에 집중해야 효과가 있는지 정보를 찾아내 분석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난 뒤 방학 계획표는 온 가족이 함께 작성했다.

제국이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꿈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다지기 위해 작가 한비아 씨와의 대화에 참여할 계획도 세웠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것이 꿈인 민경이에게 한 씨의 다양한 경험이 뭔가 확신을 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전업주부였던 어머니 박은화 씨(43)는 민경이가 어느 정도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궤도에 오르자 3개월 전부터 직장을 다니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방학계획 작성은 함께 하고 있다. 방학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신서중 3학년 최재윤 군
모의 국회
세계 청소년들과 영어로 토론 실력 겨뤄

서울 신서중(양천구 신정1동) 3학년 12반에서 항상 1등을 놓치지 않는 최재윤 군(15)은 8월 1∼3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무역센터에서 열리는 세계 청소년 모의국회(WYMC·World Youth Model Congress)에 참여한다. 의회의 의사결정과정을 그대로 재현하는 이 행사는 차세대 글로벌 리더의 자질을 키우기 위한 것으로 모든 과정이 영어로만 진행된다.

실제 국회의원처럼 법안을 입안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민주주의의 정수를 배우게 되는 것. 재윤이가 속한 그룹은 교육 분야이다. 재윤이는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하루 종일 토론과 협상을 하는 이 행사를 이번 여름방학 가운데 핵심 활동으로 생각하고 있다. 재윤이는 “좋은 법안을 내서 동료 의원과 상대 당 의원들을 잘 설득하게 되면 상도 받을 수 있다”며 수상의지를 불태웠다.

재윤이는 영어권 국가 체류 경험이 전혀 없지만 영어 실력이 남들에게 전혀 뒤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장점을 활용해서 여름방학에는 인천세계도시축전 통역 봉사에 참여할 계획이다. 봉사에 참여해 견문도 넓히면서 동시에 영어 실력도 쌓는 일석이조 효과를 노리는 것.

어머니 김은미 씨(46)는 “이색 체험 모두 재윤이가 스스로 찾아내 결정한 것”이라며 “엄마는 재윤이 옆에서 응원해 주는 역할만 했다”고 했다. 다만 김 씨는 사교육보다는 공교육을 강조하면서 “신서중은 양천구 내에서도 영어 활성화가 잘돼 있는 곳이어서 재윤이의 영어 실력 향상에 효과를 봤다”며 “아이의 영어에 대한 관심을 학교가 잘 자극해 줬다”고 평가했다.

재윤이와 어머니가 신경을 쓰는 또 다른 방학 활동으로는 신서중 ‘새누리 학교(방과후 학교)’에 개설된 ‘자기 주도 학습법 강좌’에 참여하는 것이다. 7월 23일∼8월 27일까지 주 1회 1시간 반 정도 수업한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무엇보다도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 확립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이 강좌를 듣기로 했다.

서울시교육청 산하 동부교육청이 주관하는 영재교육원의 방학 집중 교육에도 참여해 돼지 심장 해부, 축구공에 얽힌 과학 등 다양한 실험도 할 예정이다.

■서울 학동초 6학년 이산 군
영어 동화
집 근처 도서관 찾아 1000권 독파 대장정

서울 학동초등학교(강남구 논현2동)에서 어린이회장을 맡고 있는 6학년 1반 이산 군(12)의 올 여름방학 목표는 영어 동화책 1000권을 읽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어머니 최은영 씨(41)는 며칠 전 산이와 함께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을 찾았다. 그동안은 학교에 있는 전자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지만 방학동안에는 더 많은 책을 읽기 위해 엄마가 나선 것.
처음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을 찾은 엄마와 산이는 최신 시설과 막대한 분량의 책에 흥분돼 올 여름방학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최 씨는 산이와 함께 주 2, 3회는 이곳에 들르고 나머지 2, 3회는 학교와 강남도서관, 논현2동 주민센터도서관에서 영어 동화책을 읽을 생각이다. 이번 여름방학은 중학교 진학을 앞둔 산이가 영어에 대한 흥미를 최대한 끌어 올리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최 씨는 “학동초등학교는 서울시교육청 지정 영어 거점학교로 수준별로 수업이 나뉘어 있어 많은 학생들이 영어 공부를 쉽고 재밌게 하고 있다”며 “이런 수업이 방학 때는 끊기기 때문에 아이의 관심을 유지해 줘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늘 가던 곳보다는 새로운 곳에서 긍정적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다.

영어 동화책을 선택할 때는 무리하게 단어가 많거나 문장이 긴 것보다는 그림이 많고 화려한 미국의 유치원 아이들이 보는 수준의 것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산이가 영어 동화책을 읽을 때 최 씨는 옆에서 일본어 책을 읽기로 했다. 어렸을 때부터 산이에게 특별한 교육을 하기보다 옆에서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 어린 아이이기 때문에 운동도 빼 놓지 않는다. 여름방학 때 주 3회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키 크는 교실’에 참여시킬 예정이며 동네 문화체육센터를 이용해 아침 수영도 배우도록 할 생각이다.

김기용 기자 k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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