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사립대 ‘살생부’에 떤다

  • 입력 2009년 7월 24일 03시 00분


정체불명 ‘퇴출대상 리스트’ 인터넷 나돌아
교과부, 30여곳 ‘부실’ 실사… 11월 최종 결론

최근 교수 채용 공고를 낸 지방의 A대에는 익명의 전화가 몇 통 걸려왔다. ‘연말에 학교를 정리한다는 소문이 사실이냐’는 문의 전화였다. A대 관계자는 “강사들 사이에 그런 소문이 돌고 있다”면서 “학교 내부에서는 논의된 적도 없는 헛소문이라 너무 당황스러웠다”고 전했다.

강원 지역 B대학의 한 보직 교수는 최근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떠도는 ‘퇴출 대학 리스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글이지만 시도별로 분류된 20개의 학교 명단이 마치 신문기사인 양 올라와 있었다. 이 교수는 “보직회의에서 이 얘기를 꺼냈더니 정체불명의 살생부를 봤다는 교수들이 꽤 있었다”면서 “내가 본 리스트에는 우리 대학 이름이 없었는데 다른 리스트에는 들어 있다고 하더라”라며 불안해했다.

5월 교육과학기술부가 연말에 부실 사립대를 퇴출하겠다고 예고한 이후 지방대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부실 사립대 정리를 맡은 ‘대학선진화위원회’는 지난달 부실 사립대 선정 기준을 결정한 데 이어 지방 대학가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신입생 충원율, 교원 확보율, 재단 전입금 비율 등 교육 여건과 재정 상황을 판단하는 지표가 심사 대상이 됐다. 부실 사립대 기준에 해당하는 40여 개 대학 중 30곳 정도가 집중 조사 대상에 올랐다. 시도별로 많은 지역은 4∼6곳, 적은 지역은 1, 2곳의 대학이 현장 실사 대상으로 꼽히고 있다.

대학선진화위원회는 조만간 이들 대학을 직접 찾아가 실사에 나설 예정이다. 교육당국은 정리 대상을 최종 결정하는 11월 말까지는 해당 대학에 대해 보안을 유지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대학들은 ‘현장 실사가 시작되면 퇴출 대상 대학의 이름이 나도는 것은 시간문제’라며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이달 초 제주도에서 열린 대학총장협의회에서 한 지방대 총장은 “인터넷에 근거 없는 퇴출 대학 리스트가 돌고 있다. 인터넷을 많이 쓰는 청소년들이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잘못된 판단 근거로 삼으면 어떻게 하느냐”며 안병만 교과부 장관에게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대학 구조조정을 뒷받침하기 위해 교과부는 최근 법 개정에 착수했다. 사립대 법인이 해산하면 학교 재단으로 공익법인을 세우거나 잔여 재산을 법인에 귀속시킬 수 있도록 하는 사립학교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설립자가 투자한 재산을 회수할 길이 없어 망해가는 학교를 붙들고 있는 경우를 감안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법안이 사학 재단의 무책임을 조장할 것이라는 반발도 있다. 교수노조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주축이 된 사립학교개혁국민운동본부는 23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립학교법 개정안은 부실 사학의 잔여 재산 처분권을 대학 운영자에게 줘서 이들이 편법으로 학교 재산을 빼돌릴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비판했다.

김희균 기자 for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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