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논문이나 실적이 없는데도 훌륭한 대학에서 조교수로 임용해주다니 너무 감사할 뿐이죠. 그렇지만 이제 막 공부하는 사람일 뿐인데 ‘최연소 교수 임용’이란 수식어로 부각되는 것이 너무 부담스러워요.”
23일 대전 유성구 과학로 KAIST 수리과학과 연구실에서 만난 최서현 교수(26·여)는 화장도 안 한 ‘앳된’ 얼굴로 기자를 맞이하면서도 카메라 셔터 소리에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사코 인터뷰를 사양하던 최 교수는 ‘만 26세로 KAIST 역대 최연소 교수로 임용됐다’는 언론 보도에 곤혹스러운 듯 “정 기사를 쓰려면 가장 눈에 안 보이게 써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인터뷰 내내 자신을 ‘풋내기’라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교수가 아니라 여대생을 마주한 듯했다.
최 교수는 서울과학고 시절인 1999년 루마니아와 2000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금상을 수상했던 수학 영재로 유명했다. 서울대 수리통계학계열을 3년 반 만에 조기 졸업하고 2004년 하버드대 수학과로 유학을 떠나 5년 만인 지난달 석·박사 과정을 동시에 마쳤다.
‘박사 후 과정’도 거치지 않은 최 교수를 곧바로 임용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KAIST에선 종전에 메리 톰슨 건설·환경공학과 교수와 신중훈 물리학과 교수가 27세에 임용된 기록을 1년여 앞당긴 것이다.
최 교수는 “수학을 어떻게 잘하게 됐느냐”는 질문에 “하고 싶은 것을 했기 때문”이라며 “사법시험 공부를 하거나 의대를 가라고 했다면 정말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내 수학교육 현실을 묻는 질문에 “어린 나이, 그것도 학문적 성과가 없는 제가 무슨 주제넘은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한국 초중고교의 수학은 수준이 매우 높아 되레 학생들이 꺼리는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최 교수는 박사과정 때 하버드대 학부 1년생을 가르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수업을 하기 전 하버드대 교수님들에게서 ‘생선을 잡아주는 것보다, 생선 잡는 방법을 가르쳐라’라는 소리를 여러 번 들었다”며 “이를테면 미적분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답을 알려주기보다는 잘못된 점을 교정하도록 해 결국 답을 얻어내도록 도우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버드대에서 공부하는 방법을 미리 터득한 학생들이 알아서 자기계발을 하는 모습을 직접 체험하고 목격했기에 이를 앞으로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수학은 논리적인 특성이 강하고 깔끔한 학문이지만, 동시에 구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매력적인 학문”이라며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지 말고 풀어내는 데서 느끼는 성취감을 맛보기 바란다”고 덧붙였다.
최 교수의 발탁은 서남표 총장이 취임 이후 취해온 개혁과도 일치한다. KAIST 관계자는 “교수 임용의 큰 원칙은 창의성이 얼마나 있느냐, 미래의 중요한 문제를 풀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있느냐는 것”이라며 “최 교수는 창의성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최 교수가 SCI(과학논문인용색인)급 논문 등 뚜렷한 연구 실적이 발표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용이 이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최 교수 임용 절차에 대한 뒷얘기도 화제다. 올해 초 그는 KAIST 수리과학과 교수 30여 명 전원과 개별 면접을 치렀다. 이어 공동 세미나→학과장 면접→교무처장 면접 과정을 거쳐 서 총장과 최종 면접을 했다. 앞서 지난해 11월에는 서 총장이 미국으로 직접 건너가 최 교수를 인터뷰했다. 이 과정에서 젊은 수학도의 잠재력과 참신한 연구 아이디어를 높이 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하버드대 경제학과 학·석사과정을 동시에 마친 박원희 씨(22·여)는 “서현 언니는 대학 재학 중에도 학교에서 수학 천재로 통했다”고 말했다. 그는 “보통 석·박사를 동시에 마치려면 6, 7년 걸리는데 언니가 5년 만에 끝낸 것은 논문 제목과 아이디어가 높게 평가받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교수를 학문적으로 평가하기에는 아직은 이를 수 있다. 하지만 김동수 KAIST 수리과학과 학과장은 “최 교수는 매우 흥미로운 정수론의 첨단 문제를 연구하는 수학자로서 검증된 실적보다는 미래 잠재력을 보고 선발했다”고 말했다. 수학계에서는 “최 교수의 연구 분야는 그만큼 논문을 내는 것이 어렵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분야”라며 “젊은 연구자를 과감하게 영입해 미래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KAIST의 도전 정신을 평가할 만하다”고 말했다.
대전=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