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세밀한 정보 필요” 요구에
“학교간 서열화 조장” 반대도
교과부, 구체정보 제공 꺼려
나는 세상에 나오는 순간 잠들 운명으로 태어났다. 모두들 내가 깨어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생각했다.
13세가 되던 2006년 서울행정법원은 교수 3명의 요청을 받아들여 나를 깨워도 좋다고 판결했다. ‘연구 목적에 한해서’라는 단서를 붙였는데도 나를 철통 경비하던 교육인적자원부는 즉각 항소했다. 항소에 상고를 거치면서 법정 다툼이 2년 넘게 계속됐다. 나는 하릴없이 계속 잠만 잤다.
그 사이 나를 깨워야 한다고 처음 주장한 조전혁 인천대 교수가 2008년 한나라당 국회의원이 됐다. 조 의원이 지난해 9월 다시 나를 깨워야 한다고 주장하자 교육과학기술부는 올해 3월 국회의원들의 ‘접근권’을 허용하겠다고 대답했다. 올해 4월 나를 처음 만든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이제 일어날 준비를 하라’는 연락이 왔다.
바깥은 여전히 시끄러웠다. 조 의원은 “객관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정책 결정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은 “호기심으로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결국 재앙만 남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학부모들도 “학교 간 서열화가 가속화할 것”이라며 반대하는 쪽과 “정보를 공개해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찬성하는 쪽으로 나뉘었다.
시끄러울 만했다. 1994학년도 이후 사실 내가 곧 교육이니 말이다. 나는 대학수학능력시험 원자료다.
갑론을박 끝에 교과부와 평가원은 20일부터 국회의원들이 지난 5년간 나의 ‘근황’을 열람할 수 있도록 좁은 창을 냈다. 의원들은 소문부터 확인하고 싶어 했다. 15년 동안 소문만 무성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한 여당 의원 보좌관은 “평가원에서 1∼4등급을 묶어서 성적을 공개한 것과 영역별 1등급만 뽑아 보면 결과가 다르다. 전체 1등급 중 서울이 40%, 경기도가 20% 수준이나 된다”고 했다. 그는 “2005년 15% 수준이던 경기도가 지난해 20% 수준으로 오른 걸 보니 우수 학생의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권영길 의원(민주노동당)과 함께 나를 보고 간 전교조 관계자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수능 성적을 분석해 평준화의 실효성을 입증하겠다”고 했다 한다.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성적이 좋다거나 재수생이 고3 학생보다 성적이 좋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대부분은 사실이다.
그러나 나를 만나고 돌아간 사람들은 “16년 만에 처음 보는데 두 시간은 너무 짧다”고 불만스러워 했단다. 조 의원은 “지역별 학교별 학력격차 해소 방안을 마련하려면 세밀한 정보가 필요한데 자료 공개가 미흡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른 의원들도 성에 차지 않아 계속 자료를 요청하고 있다. 특목고 학생과 일반고 학생의 자료를 분리해달라는 주문이 가장 많다. 교과부 직원들도 고민인 모양이다. 그들도 말로만 듣던 나의 실제 모습을 본 뒤 “이걸 밖에 알려도 괜찮을지 ‘위’에 확인해 봐야겠다”고 한 뒤 자리를 떴다.
다시 잠드는 편이 나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 저 멀리서 밀실 문을 다급하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를 깨우기 위해 오래 공을 들인 교육학자들이 “이런 식으로 하는 공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 우리가 직접 들어가서 볼 수 있는 길을 열어 달라”고 외치는 소리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