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외롭다’고 표현한 건 중국을 강한 나라로 만들지 못한 데 대한 후회와 아쉬움 때문이 아닐까요?”
“자신이 젊은 시절 이루지 못했던 꿈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29일 오전 10시, 서울대 관악캠퍼스의 한 강의실에 학생 30여 명이 모였다. 책상 위에 펼쳐져 있는 수업 교재는 루쉰의 단편소설집 ‘납함((눌,열)喊)’ 서문의 영어번역본. 학생들은 루쉰이 자신의 젊은 시절에 대해 서술한 내용을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모두 서울대 국제하계강좌 중 ‘동아시아의 가치와 정체성’ 수업을 듣기 위해 모인 학생들이었다. 수업 시간에 사용하는 언어는 영어뿐. 학생들의 국적은 영국, 중국, 한국 등으로 다양했다. 강의는 독일 본 대학의 볼프강 쿠빈 교수가 맡았다. 독일의 대표적인 중국학자인 그가 한국에서 강의를 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강의는 루쉰의 작품에 영향을 미친 1919년 5·4운동 등 중국 근대사부터 근대 유럽의 문학과 철학 등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다.
대학들 각국석학 초빙강좌 붐
외국학생 참여높고 주제다양
미국 어바인대에서 국제학을 전공하고 있는 로렌 만자노 씨(20)는 미국에서 13년간 태권도를 배운 경력을 살려 올여름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일하고 있다. 만자노 씨는 “교수님이 유럽 출신이라 그런지 중국문학과 유럽문학을 비교하는 내용이 많아 흥미롭다”며 “학생들의 태도가 진지하고 수업 분위기도 좋아 다음 학기에는 서울대에서 공부하는 것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후 1시경 강의가 마무리된 뒤에도 몇몇 학생은 강의실에 남아 질문공세를 펼쳤다. 쿠빈 교수는 강의실을 나서며 “일부 학생은 내가 가르치는 본 대학의 중국학 전공자들보다 더 뛰어나다”며 “그 열정과 지성에 깜짝 놀랐다”고 전했다.
서울대는 2007년부터 국내 학생에게 세계 수준의 강의를 제공하고 외국 학생에게는 한국문화 체험의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국제하계강좌를 시작했다. 올해 수강생은 140명. 이 중 110여 명이 외국 대학에서 왔다. 전체의 절반 수준이던 작년에 비하면 크게 늘었다. 서울대 대외협력본부의 이기석 국제하계강좌 매니저는 “주로 주변에서 입소문을 듣거나 인터넷 홈페이지를 보고 문의하는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올해는 영국과 이탈리아, 미국 등 각국 교수진이 주로 동아시아 역사와 문화, 안보와 경제발전 등을 주제로 강의한다. 교수진은 지난 강좌에서 평가가 좋았던 교수를 다시 초빙하거나 서울대 교수들로 이뤄진 대외협력본부위원회에서 추천을 받는다. 이기석 매니저는 “북미권 중심에서 벗어나 강의의 다양성을 강화하기 위해 ‘동아시아’를 주제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연세대가 개설한 국제하계대학에서는 한국어 강좌부터 미시경제학 강의까지 다양한 주제의 강의 90여 개를 1400여 명의 학생이 수강하고 있다. 2005년부터 국제하계대학을 운영하고 있는 고려대 역시 110여 개 강의를 마련해 1600여 명의 학생이 수강하고 있다. 두 대학은 인문 사회과학 위주의 서울대와 달리 공학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의 강의를 개설해 놓았다. 손장환 연세대 국제하계대학 매니저는 “과거에는 조기유학생의 학점 따기용이라는 비판도 많았지만 최근에는 유학생이라도 미국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 학생이 대부분”이라며 “각국의 석학을 초빙하고 학사관리를 엄격히 하는 등 강의의 질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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