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점수줘 고맙다며 ‘수천만원 사례’ 언질”
다른 심의위원에도 접근…명단 사전유출 의혹도
공사를 따내기 위해 건설업체들이 입찰 심의위원들을 상대로 거액을 전달하는 등 로비를 했다는 폭로가 나와 파문이 일고 있다.
조달청과 경기 파주시가 발주한 공사의 입찰 심의위원으로 참여했던 Y대 L 교수는 4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K건설 영업팀장이 지난달 28일 연구실로 찾아와 ‘교하신도시의 복합커뮤니티센터 공사권을 따내는 데 도와줘서 고맙다’며 1000만 원 상당의 백화점 상품권을 건넸다”고 밝혔다. 4일 L 교수는 K건설 팀장이 건넨 백화점 상품권 10만 원짜리 100장과 당시 팀장과 주고받은 대화 내용이 녹음된 파일을 공개했다.
K건설은 지난달 17일 심의위원 10명이 참가한 심의위원회에서 96.44점을 받아 91.62점을 받은 H건설과 86.80점을 받은 D건설을 제치고 시공사로 선정됐다.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티센터는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행정시설과 복지 체육 청소년시설 등이 들어선다. K건설은 이 공사를 559억3200만 원에 수주했다.
○ “높은 점수를 줘 은혜 갚으려…”
L 교수에 따르면 K건설 팀장은 심의가 끝난 지 열흘이 지난 지난달 27일경 “도와주셔서 고맙다. 찾아뵙겠다”며 전화를 하고 28일 오전 11시경 학교 연구실로 찾아와 상품권을 건넸다.
L 교수가 4일 공개한 녹음 파일에 따르면 이 팀장은 당시 “요즘은 전사적으로 영업을 한다. 교수님 덕택에 점수 차가 좀 나가지고 은혜를 갚는 인사 차원에서 준비한 게 있다”며 상품권을 건넸다. 통신 부문을 심의한 L 교수는 K건설에 100점 만점에 98.20점, D건설에 94.85점, H건설에 93.75점을 줬다. 또 이 팀장은 “상무님이 한번… 수천만 원 정도 준비를 했고 다음 주에 시간되시면 상무님이 따로…”라고 말해 추가 금품 제공 의사를 밝혔다.
이 때문에 L 교수 외에 다른 심의위원들에게도 금품이 전달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일고 있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입찰 심의 평가표에 따르면 입찰업체 3곳 중 K건설에 가장 높은 점수를 준 심의위원은 L 교수 외에 4명이 더 있다. 4명 중 연락이 닿은 3명은 K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된 뒤 이 회사 직원들이 찾아왔다고 털어놨다. 이 가운데 한 교수는 “K건설 직원이 찾아와 금품 전달을 시도한 사실이 있다”고 인정했다. 이 교수는 “7월 말경 K건설 직원이 찾아와 밥을 사고 돌아갔다”며 “봉투에 뭔가를 넣어서 주기에 열어보지도 않고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거기서는 계속 ‘괜찮다’면서 받으라고 하는 걸 ‘돈 좀 받았다가 인생 망칠 일 있냐’며 돌려보냈다”고 말했다.
○ 건설사들의 오랜 관행
건설사들이 공사 수주를 위해 심의위원을 극진히 모시는 일은 건설업계의 오랜 관행이다. 공사 입찰에 필요한 설계도면을 제작하는 비용 등으로 전체 공사비의 3%가량을 미리 쓰는 탓에 수주를 못하면 이 돈을 고스란히 날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심의위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가능한 모든 방법이 동원된다. 호화로운 식사 대접부터 가족 생일잔치 비용을 대주거나, 해외세미나 경비를 지원하고, 연구용역을 높은 가격에 주기도 한다. 때로는 직접 돈을 주는 일도 있다. 실제로 2006년 서울 송파구 장지동 동남권유통단지 턴키공사 심의 때에는 대형 건설사들이 심의위원들에게 각각 현금 3000만 원, 5000만 원 등을 주고 1억2000만 원의 연구용역 등을 제공한 사실이 지난해 초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심의위원 후보에 오르면 상시 관리를 한다. 누가 심의위원이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심의위원은 인재 풀 가운데 보통 평가를 하는 날 새벽에 추첨으로 선정된다. 발주처에서 새벽에 선정된 심의위원에게 전화를 해서 어디로 오라고 하고 외부 연결을 차단한 채 밤까지 평가를 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K건설이 수주한 교하신도시 복합커뮤니티센터 공사 건에서는 심의가 시작되기 전까지 심의위원의 신상을 공개하지 않았는데도 심의 전에 L 교수에게 “잘 봐 달라”는 전화와 문자가 왔다는 사실이 밝혀져 사전에 명단이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
L 교수는 “K건설의 디자인이 좋아서 높은 점수를 줬는데도 금품을 건네 황당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길진균 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