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의 재력, 아빠의 무관심, 엄마의 정보력, 자녀의 체력, 형제의 희생. 자녀 교육에 성공하기 위해 갖춰야 할 5대 요소라고 시중에 떠도는 우스갯소리다. 이 중에서도 엄마의 정보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나머지 요소를 모두 갖춰도 헛힘 쓰기 십상이다. 그래서 엄마부대는 오늘도 정보를 찾아 입시설명회다, 학원 상담이다 쫓아다니기 바쁘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적잖이 사교육 업체의 주장에 지갑을 여는 것이 현실이다. 사교육 업체의 주장 중 ‘진실’은 어디까지일까.》
○ 외고 입시 듣기 평가가 제일 중요
올해 서울지역 외국어고 내신 실질 반영률은 지난해 46%에서 57%로 올랐다. 또 중학교 수준은 물론이고 대학수학능력시험보다 어렵다는 지적을 받은 듣기 평가도 쉽게 출제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해 학원가에서는 “어차피 내신이 비슷한 학생이 경쟁을 해야 하니 영어 듣기 평가가 제일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서울시교육청은 영어 듣기 변별력이 전년보다 50% 정도 하락하면 올해 입시에서 듣기 평가로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1.8문항 정도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예전에는 내신 20%대에 머무는 학생도 듣기 평가를 통해 ‘역전 승부’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학생이 줄어들 것”이라며 “학교 공부에 충실한 학생이 뽑힐 수 있도록 중학교 수준에 맞춰 듣기 평가 문제를 내겠다”고 말했다.
또 일부 사교육 업체에서는 “인성면접은 구술면접과 달리 객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에 학교에서 ‘IET 국제영어대회’나 토플 점수 같은 성적을 비공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부추긴다. 하지만 서울시교육청이 공개한 예시 문제를 보면 “외고에 진학하려는 이유는?” “10년 후 나의 모습은?”처럼 정답이 정해지지 않은 유형이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남은 기간 구술면접에서 국어 사회 등 교과 지식을 구두로 물어볼 수 있다고 판단해 따로 공부하는 것은 금물이다. 앞으로도 올해의 출제방침을 계속 유지할 방침”이라며 “방과후 학교에 준비반을 만들어 학교에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해 학생들의 외고 진학을 돕겠다. 사교육 업체 주장에 현혹되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한편 전주 상산고는 여학생 학급(4학급)이 남학생 학급의 절반이다. 이 때문에 특별전형에서 남학생을 선호한다는 소문이 퍼져 있다. 이에 대해 김형균 교무주임은 “그런 일은 절대 없다”며 “일부 학원에서는 수학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심층면접을 볼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중학교 수준에서 충분히 풀 수 있는 문제만 낼 것”이라고 말했다.
○ 선행학습 없이는 특목중, 특목고 못 간다
2000년대 들어 선행학습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각 학원에서 “당신 자녀만 뒤처졌다”는 ‘불안 마케팅’을 펼치면서 예전에 한두 단원 빨리 나가던 분위기에서 “최소 2, 3년은 앞서야 한다”는 의견이 대세가 됐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강사 A 씨는 “선행학습을 해야 특목고에 가는 게 아니라 선행학습을 안 하는 학생이 없으니 특목고 학생 중 선행학습 경험자 비율이 높은 것”이라며 “시험 문제를 아무리 쉽게 내겠다고 해도 ‘변별력 있는 한두 문제를 풀려면 꼭 선행학습을 받아야 한다’고 하면 안 넘어갈 학부모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지역 외고는 듣기 평가 문제를 공동 출제한다. 학교별로 면접 형태를 달리할 수 있지만 인성면접의 큰 틀을 벗어날 수 없다. 토플 토익 같은 공인영어시험은 평가 대상에서 빠진 지 오래다. 시교육청이 방향을 정하면 일단 따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학교에서 임의로 선행학습을 유도할 수가 없다.
내년에 서울에 문을 여는 자립형사립고인 하나고도 “선행학습을 한 학생보다 중등 교육 과정을 충실히 한 학생이 유리하도록 할 것”이라며 “면접관이 문제 해결 과정 자체를 지켜보고 결과물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요구할 방침이다. 평소에 독서를 많이 해야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진로교육 전문업체 와이즈멘토 조진표 대표는 “기억을 장, 단기로 나눌 때 장기 기억이 많아야 시험을 잘 본다. 장기 기억을 끌어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학습법은 복습”이라며 “예습은 단기 기억에 저장돼 당장 효과가 있어 보일 뿐 ‘심화 없는 선행’은 아무 효과가 없다”고 말했다.
○ 국제중 가려면 교외수상실적이 많을수록 좋다
2010학년도 입시부터 서울지역 국제중 입시에 자기소개서가 도입됐다. 이에 따라 학원가에서는 “학생의 각종 활동을 증명할 수 있는 멀티미디어 자료를 모아 컴퓨터 파일로 제출해야 좋은 점수를 받는다”고 주장한다.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국제중 자기소개서는 대입 때 학생들이 쓰는 것처럼 서너 개 항목을 주고 이에 대해 답변하는 형태다.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학교생활기록부가 전부다. 강신일 대원국제중 교감은 “교사의 착오로 수상 실적이 누락된 경우에만 별도 증빙 서류를 받을 방침”이라고 말했다.
또 교외 수상 실적도 최대 두 개까지만 받는다. 중앙행정기관이 주최한 대회가 아니면 수상 실적이 있어도 인정받지 못한다. 수상한 대회가 인정받을 수 있는지는 각 학교 홈페이지에서 확인하면 된다. 대원국제중은 봉사 활동이 10시간이 넘어가면 모두 만점이다.
○ 사설 업체 검사 받았더니 영재라는데
국제중과 특목고 진학에 영재교육원 수료 경력이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어린 자녀를 둔 학부모들 사이에서도 ‘영재성 검사’가 인기다. 사설 영재학원은 각종 검사 도구로 시험을 보게 한 뒤 ‘자녀가 상위 0.3%에 속한다’ ‘평범한 교육을 받으면 자녀의 영재성이 사라진다’고 학부모를 유혹한다.
하지만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센터 관계자는 “일부 업체에서 우리와 연계된 것처럼 영재성 검사, 창의문제 해결력 검사, 사고력 검사 등을 실시하고 있지만 우리와 아무 관련이 없다”며 “사설 업체 경험은 16개 시도교육청 영재교육원 및 대학부설 영재교육원 선발 과정에서 참고 자료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선행학습을 통해 기출문제 풀이에 익숙해지는 것이 영재성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 올림피아드 시대는 끝났다.
올해 한국수학올림피아드(KMO) 1차 시험 응시자는 1만5818명으로 지난해보다 877명 늘었다. 과학고 입시에서 중요도가 떨어졌지만 민족사관고나 전주 상산고 등 자립형사립고에서 KMO 수상 실적을 입학 자격 요건이나 가산점 대상으로 삼기 때문에 지원자가 줄지 않은 것이다. 앞으로 대입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이 늘어나면 수학 관련 학과 진학 때 KMO 수상 실적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KMO는 중등부에서 고등부 선행학습을 요구할 정도로 문제가 까다롭다는 사실은 명심해야 한다. ‘남들이 하니까 우리 아이도 시킨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큰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KMO 활용도가 예전보다 떨어진 만큼 자녀 적성이 이과 성향일 때만 준비를 하는 편이 좋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