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시대회 입상경력 없지만 과학-봉사활동 자신 있었죠”

  • 입력 2009년 8월 12일 02시 50분


서울 동대부고 오장섭군, KAIST 입학사정관제 돌파 비결

입학사정관제 선발 대비
과학상식 스크랩하며 준비
스스로 문제해결 능력 길러
양로원 봉사 경력도 점수

“저를 표현하는 네 개 단어는 ‘야구’, ‘럭비’, ‘무궁화’, ‘조명’입니다.”

KAIST 합격 여부를 가리는 최종 면접에서 “자신의 능력을 피력해 보라”는 질문에 서울 동국대 사대부고 3학년 오장섭 군(17·사진)은 이렇게 답했다. 야구의 팀워크와 럭비의 돌파력을 갖춘 것은 물론이고 매일 피고 지는 무궁화처럼 늘 초심을 잃지 않고 남을 비추는 조명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로부터 2주 후. 오 군의 이름은 KAIST 학교장 추천 전형 합격자 150명 가운데 있었다.

처음 시행된 입학사정관제를 뚫고 KAIST에 합격한 오 군은 우등생들의 단골 멘트를 읊듯 “학원은 안 다녔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 군이 입학사정관의 눈에 든 비결은 다른 곳에 있었다.

오 군이 KAIST 입학을 준비한 것은 입학사정관제 시행이 발표되면서부터였다. 오 군은 “성적이 엄청나게 좋지도 않고 외부 경시대회에 나간 적도 없어서 KAIST는 꿈꾸지 못했지만 입학사정관제라면 나도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4월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뒤져가며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과학 상식을 꾸준히 모았다. 그렇게 만든 스크랩북은 오 군에게 가장 큰 무기가 됐다.

동대부고는 KAIST 입학사정관제에 대비해 자체적으로 ‘KAIST 추천 선발팀’을 조직했다. 수학 과학 성적이 좋은 10명의 학생들이 추천 후보자로 뽑혔다. 오 군의 성적은 이과학생 163명 중 5등 정도다. 수학과 과학 교사들이 면접관으로 나서고 담임교사들은 학생의 추천서를 작성했다. 3단계 자체 과정을 거쳐 오 군이 최종 선발됐다.

학교장 추천자로 오 군이 최종 선발된 가장 큰 이유는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 덕분이었다. 오 군의 담임인 임상선 교사는 “초중학교 생활기록부를 참고하고 그동안 오 군을 가르쳤던 다른 교사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하나같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탐구력이 뛰어나다고 평했다”고 말했다.

KAIST 1차 전형은 동대부고를 방문한 교수와 일대일 면접이었다. ‘일반 콜라캔은 물에 가라앉는데 왜 저지방 콜라는 물에 뜨는가’, ‘물이 얼면 병이 터지는 이유’와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스크랩북을 만들면서 봤던 내용이라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었다. 면접을 마친 교수는 학교에 “수학은 일반 학생 수준이지만 과학은 과학고 학생 이상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입학사정관이 특히 관심을 가졌던 것은 봉사활동이었다. 면접에서도 봉사활동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오 군은 고1 때부터 서울 관악구의 한 양로원으로 매달 봉사활동을 나가고 있다. 오 군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만나면서 내성적인 성격이 많이 활발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KAIST 입학사정관은 “교내 자체 선발과정과 다양한 정보를 담은 포트폴리오가 학생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줬다”며 “양로원 봉사활동과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은 점이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6명이 한 조를 이뤄 벌이는 집단토론에서도 오 군의 스크랩북은 큰 도움이 됐다. 토론 주제였던 신종 인플루엔자에 대해 이미 다양한 자료를 수집해 뒀기 때문이었다. 오 군은 “운이 좋아 합격할 수 있었다”며 “앞으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기 위해 영어 공부도 하고 컴퓨터 자격증 준비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남윤서 기자 bar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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