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직후 일본 기업들이 일제강점기 때 징용당한 조선인 피해자들의 ‘미불(未拂)임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맡긴 ‘공탁금’에 대해 한국 정부가 반환 청구를 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명시적으로 밝혔다.
14일 서울행정법원에 따르면 한 징용 피해자의 아들 이모 씨가 “징용 피해자에게 지급하는 위로금 정책이 부당하다”며 낸 행정소송과 관련해 외교통상부는 6월 재판부에 서면으로 회신한 사실조회에서 “일제 동원 피해자 공탁금은 청구권 협정을 통해 일본에서 무상으로 받은 3억 달러에 포함돼 있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에 청구권을 행사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 ‘공탁금’은 일본 기업들이 일제강점기 때 조선인을 고용하고도 임금을 주지 않은 게 사회 문제로 비화하자 1946년 일본 정부가 해당 기업들에 미지급 임금을 공탁소에 맡길 것을 지시하면서 조성된 돈으로, 규모는 당시 액면가로 3억600만 엔이며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3조∼4조 원으로 추정된다.
징용 피해자들의 미지급 임금 문제에 대해 정부가 반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포괄적으로 밝힌 적은 있지만 일본 기업들이 미불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체 조성한 ‘공탁금’을 구체적으로 지목해 반환 청구가 어렵다는 뜻을 문서로 밝힌 적은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외교부의 이번 방침이 주목받고 있다. 강제 징용당한 피해자들이 여전히 미불임금 반환을 위한 움직임을 지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일본에 있는 ‘공탁금’을 포기하는 듯한 입장을 밝힌 것이어서 한국 정부를 상대로 한 배상 요구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미불임금 반환 청구가 어렵다는 입장은 국무조정실 보도 자료와 국회 답변 등을 통해 이미 여러 차례 밝힌 적이 있고, 이런 기조하에서 관련 법률에 따라 지원 피해자들에게 일정액을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