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낮 12시 반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 후문, 이 학교 강사 김영곤 씨(61)가 ‘4학기 이상 연속 강의한 비(非)박사 강사에 대한 해고를 철회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김 씨는 “최근 2년(4학기) 이상 연속 강의한 비박사 강사 88명이 해고됐다”며 해고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이 거리로 나선 것은 2년 이상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토록 규정하고 있는 비정규직보호법 때문이다. 박사학위가 없는 강사는 정규직 전환 대상이라 이들의 정규직 전환에 부담을 느낀 대학들이 ‘근로계약 해지’를 속속 통보하고 있다.
김 씨는 올해 61세로 나이 예외 조항 덕분에 해고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행법상 55세 이상 근로자나 박사학위 소지자, 일주일 근무시간이 15시간 이내인 ‘단시간근로자’는 비정규직보호 대상에서 예외로 인정된다. 그런데도 김 씨가 1인 시위에 나선 것은 괜히 나섰다가 다음 강의를 맡지 못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젊은’ 후배 강사들을 대신해서다.
고려대 관계자는 “(강의의 질을 높이기 위해) 비박사 강사들의 강의를 줄이려는 장기적 계획하에 내린 조치”라며 “비정규직보호법과 무관한 결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정규직법 시행 유예 논의가 국회 파행으로 무산된 뒤 많은 대학에서 강사들이 해고되고 있다. 진보적이라는 서울 성공회대도 같은 이유로 8명의 강사를 해고했고 영남대도 강사 100여 명을 해고하려다가 노조와의 협의 끝에 일단 2학기까지는 고용을 유지키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비박사 강사는 비정규직으로서 근로계약서를 작성한 적이 없어 정규직 전환 대상이 아니다”며 “학생들이 이미 수강신청까지 마친 마당에 강사를 해고하면 수업 차질로 학생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노동부 관계자는 “2년 이상 연속 근무한 비박사 강사는 비정규직 보호대상이 맞다. 대학이 계약해지를 통보해도 이를 금지하거나 제재할 근거는 없다”며 “이들의 부당해고 주장이 인정받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김 씨는 “근본적으로는 강사들을 대학 정식 교원으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며 “그전에는 일단 해고 결정이 철회돼 새 학기에도 예전과 같이 비박사 강사들이 강단에 설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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