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SCHOOL DIARY]“엄마, 드라마부터 보고…”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6분


“엄마, 드라마부터 보고 공부하면 안 돼요?”
본방사수, 케이블,다운로드까지 … 청소년은 드라마에 ‘버닝’ 중

12일 오후 11시 10분. 고2 정모 양(서울 성동구 행당동)의 마음이 초조하다. 야간자율학습이 평소보다 늦게 끝난 탓에 KBS 2 드라마 ‘파트너’의 본방송을 놓쳤기 때문이다. 정 양은 누군가 빠르게 업로드(컴퓨터 통신망을 통하여 파일이나 자료를 올리는 일)해줄 것을 기대하며 귀가했다.

컴퓨터 전원을 켰다. 포털 사이트에서 드라마 제목을 검색했다. 떨리는 손으로 더블 클릭! 10분 전 끝난 드라마 동영상 파일이 이미 올라왔다.

어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올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책상 위엔 문제집을 한 권을 펼쳐놓았다. 드디어 드라마에 몰입. 정 양은 “방으로 걸어오는 엄마의 발소리와 이어폰에서 흘러나오는 드라마 주인공의 목소리를 함께 들을 수 있도록 ‘오감’을 열어놔야 한다”면서 “몰래 드라마를 보다가 엄마에게 혼난 적이 많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학기 중보다 여유로운 여름방학이면 드라마에 빠져 ‘폐인’을 자처하는 학생이 는다. 이들은 ‘드라마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공부가 안 된다’고 걱정한다.

모든 지상파 방송사의 드라마를 섭렵하는 것은 물론 케이블 방송, 인터넷 다운로드까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드라마에 무한반복 ‘버닝’(‘불타고 있다’는 뜻의 영어단어에서 나온 은어로 좋아하는 대상에 열정적으로 몰입한 상태) 중인 셈.

고1 송모 군(경기 시흥시)은 얼마 전까지 SBS 드라마 ‘자명고’에 푹 빠졌다. 학원에서 오면 인터넷을 통해 업 데이트 되는 이 드라마 관련 기사를 검색한다. 드라마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에 전날 방송을 본 소감을 올리는 것은 필수. 드라마가 저조한 시청률로 조기 종영한다는 소식이 들리자 단걸음에 포털 사이트의 ‘종영 반대’ 서명 카페로 가 서명했다.

햄버거 사먹을 돈은 없어도 드라마 주제곡(OST) 음반은 구입했다. 드라마 속 배우들의 눈빛, 손짓, 대사 하나가 심금을 울린다는 송 군은 “배경음악을 듣다가 드라마 생각이 나서 공부하다 눈물을 흘린 적도 몇 번 있다”고 털어놨다.

고3 조모 양(서울 구로구 구로동)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는 지상파 3사의 저녁 드라마를 모두 보기 위한 전략을 세웠다. 컴퓨터에는 케이블 방송 프로그램 편성표가 즐겨찾기로 등록되어 있다. 일단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는 본방송을 ‘사수’한다. 다음으로 즐겨보는 드라마는 편성표를 참고해 케이블 방송의 드라마 채널에서 다시 본다. 나머지 드라마는 주말 재방송으로 확인. 동시에 ‘꽂히는’ 드라마가 3개 이상이라는 것이 문제라는 조 양은 “‘꽃보다 남자’에 빠졌을 때는 ‘아내의 유혹’과 ‘카인과 아벨’을 함께 봤고, 최근에는 ‘선덕여왕’과 ‘트리플’, ‘찬란한 유산’을 전부 다 보느라 정신 없었다”고 했다.

부모가 ‘삼엄’하게 감시하는 경우 학생들은 좋아하는 드라마를 휴대용멀티미디어플레이어(PMP)에 담아 시청한다. 이를 위해 개인 간 파일공유(P2P) 사이트를 통해 이뤄지는 드라마 다운로드 기술도 함께 진화한다. P2P 사이트에 가입하면 마케팅 목적 무료 다운로드 용량을 지급하는데, 이를 받기 위해 가족 모두의 주민번호로 회원가입을 하는 일도 벌어진다. 정 양은 “가족들 명의로 보고 싶은 드라마를 모두 다운 받은 후엔 탈퇴까지 깔끔하게 해야 뒤탈이 없다”고 귀띔했다.

모의고사 성적이 상위 1% 이내에 든다는 고3 이모 양(경기 성남시)은 ‘미드’(미국 드라마)를 몰아보는 방식으로 공부 스트레스를 푼다. 토요일 오전이면 PMP에 미드를 가득 담아 독서실로 향한다. 점심, 저녁을 먹는 것도 잊는다. 마음을 다잡고 기출문제를 풀다가도 다 보지 못한 남은 회가 생각난다. ‘딱 한 회만 더 보자’는 유혹과 ‘수능이 100일도 안 남았다. 공부하자’는 마음이 서로 갈등하면 일단 PMP에 손이 간다. 이 양은 “시즌 형식으로 연속성이 있는 미드는 중독성이 강하다”면서 “드라마를 보면서도 수능 생각이 나서 안절부절 못하지만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다”고 말했다.

※정식 이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드라마 파일을 내려받는 행위는 명백한 불법입니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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