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눈앞 점수보다 좋아하는 걸 더깊게 더넓게…”

  • 입력 2009년 8월 18일 02시 56분


“눈앞 점수보다 좋아하는 걸 더깊게 더넓게 익혀야죠”


KAIST 합격 15세 성현우 군의 재능 + 노력 학습법

《지난 1월 독일 펠릭스 클라인 김나지움(독일의 인문계 중등교육 과정)의 수학시간. 독일인 교사의 문제풀이 과정에 오류가 발생했다. 누구도 오류를 해결하지 못한 채 수업은 잠시 지연됐다. 이 때 교환학생 자격으로 수업을 참관하던 한 한국인 고등학생이 자신이 문제를 풀어보겠다며 교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는 칠판에 새로운 방식으로 문제를 풀기 시작했고, 기존 풀이과정의 오류도 해결했다. 다른 독일인 학생들은 진지한 태도로 그의 풀이를 받아 적었다. 2006년 12세에 한국과학영재학교(이하 영재학교)에 최연소로 합격하고, 최근엔 태어난 지 15년 7개월 만에 KAIST에 들어간 성현우 군(한국과학영재학교 3학년)의 이야기다. 성 군은 선천적으로 특별한 수학적 재능을 타고났지만, 이에 상응하는 노력으로 자신의 재능을 성장시켰다. 그는 “눈앞의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좋아하는 것을 깊고, 넓게 공부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공식 암기 → 문제풀이 NO!
원리 - 개념을 이해하면 스스로 답찾을수 있어요

흥미있는 책 발견하면 비슷한 주제 책들 탐독 그 분야의 개념이해 심화

○ 실험도, 대화도 모두 수학 공부

성 군에게 수학은 ‘생활 속에서 생각하며 공부하는 과목’이자 ‘원리를 이해하는 학문’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성 군은 주위의 수학적인 규칙들을 찾았다. 자동차, 전화, 버스번호는 생활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수학교재였다. 예를 들어보자. ‘3526’이라는 자동차 번호를 보면 성 군은 앞의 두 자리 수와 뒤의 두 자리 수의 합이 각각 같다는 것을 생각해냈다. 전화번호 뒷자리가 ‘1248’이라면 각 자리수가 일정한 규칙으로 변한다는 사실을 찾아냈다. 그는 꼭 숫자가 아니라도 색깔이나 모양에서 발견할 수 있는 논리적이고 수학적인 규칙을 찾았다. 보도블록의 배치를 보면서 ‘팔각형 블록의 배열이 가로로 세 칸, 세로로 네 칸씩 띄어가며 반복되는구나’라고 생각하는 식이다.

성 군은 초등학생 때 일주일에 한 번씩 사설 영재교육원에서 다닌 것을 제외하고는 사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 이 영재교육원의 수업은 주입식, 암기식 수업과는 거리가 멀었다. 과제는 학생 스스로 수업시간에 할 수 있는 실험을 구상하는 것이었다. ‘힘과 에너지’라는 개념을 공부하기 전에 ‘다리(bridge) 만들기’라는 과제가 주어지면 성 군은 다리의 역사, 다리를 만든 과학자 등에 대해 조사하고 실험을 계획했다.

영재학교 1학년 때 성 군은 미국 미시간대에서 열린 여름 과학캠프에 참여했다. 성 군은 “당시 경험했던 미국식 수업방식은 교과서 위주와는 거리가 멀었고, 마치 한편의 영화 같았다”고 전했다. 교수와 학생들은 수학적인 개념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과 답을 했다. 교수가 질문을 던지면 학생들은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해 자발적으로 발표했다. 이런 방식으로 점차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다보니 최종적으로 수학의 개념을 자연스럽게 익혔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성 군은 “공식을 외워서 문제를 푸는 방식의 수학, 과학 학습법에는 한계가 있다”면서 “원리를 이해하고 개념을 이해하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어떤 문제에도 대응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공부하기 전 책을 펼쳐라

“책을 읽는 것은 학문 전체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요. 제가 알고 있는 상식의 80∼90%는 책에서 얻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성 군은 지금까지 1만 권 가까이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 과학 분야의 책은 자정이 넘어서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성 군은 자신의 독서법을 ‘가지 뻗치기’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흥미 있는 책을 발견하면 비슷한 주제의 책을 3∼5권에서 때론 10권 넘게 읽는다. 성 군은 “이렇게 책을 읽으면 그 분야의 개념이 머릿속에서 정리된다”고 말했다. 책에서 발췌한 관심 있는 내용은 표나 그림으로 정리해서 책상, 책장, 방문 등 눈에 띄는 곳에 붙여놓는다. 실제 성 군의 책상 앞에는 입자 물리학의 표준모형을 한눈에 알아보도록 정리한 표와 수학기호를 정리한 것, 감명 깊게 읽은 책의 표지가 붙어있다. 인문학이나 교양분야의 책은 읽고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기억해야할 만한 책은 독후감을 쓰거나 간단한 서평으로 정리했다.

일반 과목을 공부할 때는 시험이나 점수 같은 당장의 목표에 연연하기보다는 ‘맥락’을 잡는데 주력했다. 제2외국어로 공부했던 일본어를 예로 들어보자. 성 군은 일본어 공부를 위해 단어 책을 펴기 전에 일본어의 역사, 어원에 관한 책을 펼쳤다. 또 공부해야할 부분의 핵심 단어를 온라인 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에서 검색해 전반적인 내용을 파악했다. 성 군은 “이 같은 작업을 통해 일본어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알 수 있고, 무엇을 먼저 공부해야하는지 학습 계획을 세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성 군은 일본어자격시험(JLPT) 1급에 합격했다.

책을 통해 개념을 찾으며 공부하는 방식은 아버지 성용경 씨의 지도를 받았다. 성 씨는 문제 풀이에 앞서 개념을 반드시 이해하도록 지도했다. 수학의 ‘정수’를 공부할 때 수의 체계부터 정리하는 식으로 말이다.

성 군은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으로 1475편의 논문을 발표했던 20세기 천재 수학자 폴 에어디쉬의 삶을 그린 책 ‘우리 수학자 모두는 약간 미친 겁니다’를 꼽았다. 성 군은 “죽는 날까지 하루 19시간씩 수학을 생각하고 저술한 폴 에어디쉬의 모습도 감명적이었지만 명예나 지위에 얽매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연구하는 자세가 더 인상적”이라고 평했다.

남다른 재능에 열정과 노력을 겸비한 성 군. 주위에선 성 군이 한국인 최초로 수학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을 수상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 아직은 어린 나이, 주위의 기대가 부담스럽지는 않을까?

“연구 자체가 즐거웠으면 좋겠어요. 업적을 쌓고 저명한 학자가 되는 것도 좋지만 다른 학자들과 교류하면서 수학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분야의 연구를 하고 싶어요. 필즈상은 이 과정 중에 얻고 싶은 또 하나의 목표에요.” 성 군의 말이다.

봉아름 기자 erin@donga.com

:성현우 군이 추천하는 수학·과학 도서:

초급

재미있는 물리여행 1, 2

재미있는 수학여행 1∼4

원리를 알면 과학이 쉽다

생각하는 물리

장난꾸러기 돼지들의 화학피크닉

이야기 파라독스

이인식의 과학생각

세상 밖으로 날아간 수학

중급

파인만의 여섯 가지 물리 이야기

화학의 프로메테우스

유클리드의 창 : 기하학 이야기

쿼크로 이루어진 세상

풀리지 않는 과학의 의문들 14

우주의 점

유난히 설명이 잘된 수학-기하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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