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범만 잡나, 인권도 잡나

  • 입력 2009년 8월 22일 02시 58분


檢, 흉악범 DNA 채취해 DB로 관리한다는데…
사건현장 DNA도 채취-대조
누명 쓴 피해자 구제 기대
인권침해-유출악용 우려에
檢“신원확인외 쓸모 없어”

《19일 미국 위스콘신 주 매디슨 시 검찰은 랠프 암스트롱 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법원 판결에 대해 항소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1980년 위스콘신대에 재학 중이던 암스트롱 씨는 동료 여학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암스트롱 씨는 최근 ‘이노센스 프로젝트(Innocence Project)’라는 단체의 도움으로 뒤늦게 DNA 검사를 받았고 그 결과 29년 만에 자신의 결백을 입증했다. 이노센스 프로젝트는 유죄가 확정된 수형자들이 DNA 검사로 누명 벗는 일을 돕기 위해 1992년 설립된 비영리 민간단체다. 이 단체 설립 이후 암스트롱 씨처럼 DNA 검사로 무고함이 밝혀진 사람은 240여 명에 이른다.》

○ 한국판 ‘이노센스 프로젝트’ 가능할까?

21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DNA 신원 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법제처 심사를 거쳐 이르면 다음 달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법안이 원안대로 통과되면 내년 상반기에 만들어질 DNA 데이터베이스(DB)에는 살인, 강도, 강간, 마약 등의 범죄로 수감 중인 수형자와 강력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DNA 정보가 담긴다. 수형자의 DNA 정보는 법무부가, 사건 현장에서 발견됐거나 구속된 피의자에게서 채취한 DNA 정보는 경찰이 각각 관리하면서 서로 공유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처럼 ‘이노센스 프로젝트’를 통해 누명을 벗는 이들이 나올까. 대부분의 수사기관 관계자들은 회의적이다. 미국은 주요 강력사건의 증거물을 냉동상태로 보존해 암스트롱 씨의 사례처럼 오래된 사건의 증거물에서도 DNA 채취가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 같은 시설이 없어 과거 사건의 증거물이 남아 있더라도 DNA 시료 채취가 어렵다. 또 오래된 사건은 당시 채취한 DNA 정보가 남아 있더라도 현재와 감식방식이 달라서 대조가 불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DB가 도입되면 이미 유죄가 선고된 사건 중 진범이 새롭게 밝혀지는 사건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가령 과거 살인사건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에서 여러 사람의 DNA가 발견됐다면 새로 만들어지는 DB를 이용한 대조검색 작업을 통해 새로운 용의자가 발견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 DNA DB 구축은 ‘빅 브러더’ 체제의 시작?

일부에서는 정부가 모든 국민의 지문 정보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DNA DB까지 만드는 것은 지나친 프라이버시 침해라고 우려한다. 이에 대해 대검 디지털포렌식센터 이승환 유전자감식실장은 “DB에 담기는 DNA 정보는 개인의 신체, 유전적 특질에 관한 정보가 아니라 DNA를 구성하고 있는 30억 개의 염기서열 가운데 10여 곳의 패턴 유형을 숫자로 기록한 것에 불과하다”며 “신원 확인 외에는 아무 쓸모가 없어 만에 하나 유출되더라도 악용될 가능성은 제로”라고 말했다.

검찰과 경찰은 DNA DB가 구축되면 강력범죄가 크게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문감식은 온전한 모양의 손가락 흔적이 남지 않으면 범인을 찾아낼 수 없다. 하지만 DNA 감식은 현장에서 체액이나 머리카락 일부만 발견하더라도 용의자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증거를 남기지 않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져 한번 DB에 등록된 전과자들은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데 큰 심리적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DNA DB가 구축되면 장기 미제사건 가운데 상당수가 해결될 가능성도 있다. 유죄가 확정된 수형자와 구속 피의자 가운데 일부는 DNA 대조 과정에서 다른 범죄행위가 드러나 추가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전성철 기자 daw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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