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공공기관 노사관계 선진화 작업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한 공공기관의 단체협약(단협) 해지에 반발한 노조원들과 상급단체가 해당 기관장의 집 앞까지 몰려가 협박성 집회를 연 것으로 확인됐다.
23일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노동연구원노조와 이 노조가 소속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공공운수연맹 산하 전국공공연구노조는 지난달 중순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박기성 노동연구원장과 가족이 사는 서울 성북구 정릉동 A 아파트 단지 정문에서 피켓 및 집단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박 원장은 노조 탄압을 중단하고 단협 해지를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지난달 말 집회에서 동네 주민들을 상대로 박 원장의 실명과 주소를 공개하며 “○○층 △△호에 사는 박 원장이 사태를 원만히 해결하지 않으면 매일 오겠다”며 “(여러분은) 재개발을 통해 집값이 많이 상승한다고 기대하겠지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상습 집회로) 집값이 ×값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주민들을 향해 “박 원장 한 사람 때문에 여기 사는 모든 주민의 집값이 떨어질 것이다. 정릉동은 살기 좋은 동네이지만 이웃 한 명 잘못 둔 죄로 싸움이 끝날 때까지 고생할지도 모른다. 다음에 올 때는 (박 원장) 사진도 가져오겠다”고 말했다는 것.
박 원장과 가족은 이들의 협박성 시위로 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고 있다. 박 원장은 “가족들이 밤에 악몽을 꾸고 제대로 동네를 다니지 못하는 등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화가 난 아들이 뛰쳐나가 항의하려는 것을 막은 것도 수차례”라고 말했다. 이 동네 주민 김모 씨는 “집회는 할 수 있지만 집회를 이용해 동네 집값을 떨어뜨리겠다는 것은 사실상 협박 아니냐”며 “격분한 주민들과 충돌 직전까지 갔으나 경찰의 만류로 무마된 적도 있다”고 전했다. 김 씨는 “보다 못한 주민들이 정문 앞 집회를 못하게 하려고 이달 중순부터 내달 5일까지 다른 집회 신고를 냈지만 이들은 보란 듯이 내달 6일부터 10일간 다시 집회 신고를 냈다”며 “이달 말부터는 후문 집회까지 하겠다고 신고한 상태”라고 말했다.
연구원노조와 공공운수연맹이 이렇게 반발하는 것은 지난해 8월 부임한 박 원장이 올 2월 연구원 단협을 일방적으로 해지했기 때문. 박 원장은 “기존 단협은 징계권을 포함한 인사경영권이 심각하게 제한돼 있는 등 불합리한 요소가 너무 많았다”며 “기존 단협을 해지하지 않은 채 올해 단체협상을 했다가 결렬되면 결국 기존 단협이 적용되기 때문에 해지 후 새로 협상을 하려 한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원 내부 규정은 원장의 직원 평가권을 오직 연구위원(박사)에 대해 최대 18%만 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석사급 연구원, 행정직원에 대한 평가권은 부여하지 않았다. 또 △상급 기관에 연봉제 실시로 보고하고 실제로는 호봉제 시행 △고용계약서 미체결 등 불합리한 조항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석사 박사로 구성된 지식인 노조라는 사람들이 원장이 마음에 안 든다고 집 앞까지 몰려가 협박성 시위를 하고 주민에게 ‘동네 집값을 떨어뜨리겠다’고 말했다니 어처구니가 없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