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 동안 한껏 풀어졌던 몸과 마음을 규칙적인 학교 일정에 다시 맞춰야 하는 학생들에게 개학 후 일주일은 ‘마(魔)의 시간’이다.
수업시간 ‘집중하자’고 단단히 마음을 먹고도 눈꺼풀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잠에 빠진다.
수업 시작 20분이 안 되어 몸이 꽈배기처럼 꼬인다.
갑자기 복통이나 현기증을 호소하며 학교 보건실로 직행하는 학생도 있다.
준비물이나 과제물을 빠뜨리고 오는 학생은 부지기수.
심지어 요일을 착각해 이튿날 시간표에 맞춰 책가방을 싸 오는 학생도 생긴다.
반 전체 학생이 미리 입을 맞추고는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딱 30분만 수업하면 우리가 집중해서 잘 듣겠다”면서 ‘협상’을 벌이는 웃지 못할 일도 생긴다.
야간자율학습시간은 더 심각하다. 가방은 의자 위에 걸쳐 놓은 채 ‘탈출’을 감행하는 학생들이 속출한다.
일정 금액을 지불하면 한 달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 유료게임에 여전히 빠져있는 경우도 많다.
학교 앞 노래방에 모여 ‘방학 뒤풀이’에 한창인 중고교생도 목격된다.
개학을 했건만 이렇듯 ‘나 홀로 방학’ 중인 자녀를 보노라면 부모는 속이 터진다.
공부한다며 방에 들어간 지 30분도 안 돼 뛰쳐나와 TV 전원을 켜는 건 예삿일.
자꾸 컴퓨터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자녀 때문에 가정에선 크고 작은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여전히 ‘방학 모드(mode)’에 맞춰져 있는 내 아이의 학습·생체 리듬.
이를 ‘개학 모드’로 전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여름방학 흐트러진 생활 이젠 끝
우리아이 생체리듬 ‘공부체제’로
응원 메시지 담은 도시락… 잔소리 아닌 대화…
부모의 사랑 더해지면 ‘모드전환’ 쉬워져
○ ‘모드 전환’ 스위치를 재빨리 눌러라!
‘개학 후 일주일은 쉬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학생이 많다. 방학 동안 흐트러진 생활 리듬을 바로잡고, 학습에 대한 감(感)을 되찾으려면 이 정도의 ‘휴지기(休止期)’는 필요하다는 것. 하지만 이런 주장엔 중대한 허점이 숨어있다.
방학 한 달간 몸과 마음이 모두 익숙해져 버린 ‘방학 모드’는 일주일 만에 ‘개학 모드’로 휙 전환되지 않는다. 방학 모드에선 △시간 개념 △학습 의지 △유혹에 대한 자기방어 시스템이 모두 약해지기 때문이다. 학교 시간표같은 체계적인 규칙도 없이 마음대로 시간을 보내는 데다 ‘수학점수를 20점 올린다’ 같은 구체적인 목표가 없으니 학습의지도 한풀 꺾일 수밖에 없다. 또 온라인 게임, 만화책, 휴대전화 같은 학습 방해요인들을 자주 접하면서 유혹에 대한 내성도 크게 약화된다. 이런 방학 모드가 개학 후 일주일 이상 지속되면 도미노 현상처럼 학습부담이 가중되고, 결국엔 2학기 전체의 학습균형이 깨질 위험이 커지는 것이다.
방학 모드를 개학 모드로 바꾸기 위해선 ‘목표-시간-세부 실천사항’으로 짜여진 단기 학습계획표가 필수. 방학 동안 흐트러진 학습습관과 생활습관을 다잡을 수 있도록 분 단위로 계획을 세우고, 목표에 따른 세부 실천사항을 구체적으로 기록하는 게 이 계획표의 핵심이다.
부모는 자녀에게 “계획표를 세워 오라”고 그저 지시해서는 안 된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2학기 목표, 한 달 목표, 일주일 목표를 고민하며 계획을 세운다. ‘잠이 쏟아지는 오전 자율학습시간엔 MP3 플레이어로 영어듣기평가 1회분을 듣는다’ ‘책상 앞에 앉아있기 싫을 땐 좋아하는 추리소설을 30분 정도 읽는다’처럼 자녀의 약점을 콕 집어 주고 그에 따른 해결책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뿐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학습 위주로 계획표를 세우는 건 금물이다. 평소 학습량의 70% 정도로 학습계획을 세우고, 영어소설책을 읽거나 신문을 읽으면서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는 훈련을 병행하도록 유도한다. 이렇게 작성한 계획표는 자녀의 책상머리 앞 또는 가족이 모두 볼 수 있는 거실에 붙여두고, 자녀가 실천에 옮긴 항목들엔 빨간 줄을 그어 성취감을 높여준다.
시간관리 능력이 떨어지는 자녀에겐 일주일간 ‘시간일기’를 쓰도록 지도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개학날엔 먼저 ‘방학 때 어떻게 생활했는지’를 기상부터 취침시간까지 빠짐없이 쓰도록 한다. 컴퓨터 게임을 하거나 낮잠을 잔 시간처럼 노는 데 허비한 시간엔 형광펜으로 색칠을 한다. 이런 시간일기를 쓰다 보면 아이는 자신이 한 달간 얼마나 불규칙한 생활을 했는지 자각한다. 다음엔 같은 방법으로 개학날에 대한 시간일기를 쓴다. 그리고 두 일기를 비교해 본다. 개학 후 일주일간 꾸준히 이런 시간일기를 쓰면 △방학 때 흐트러진 생활·학습습관이 개선되고 있는지 △낭비하는 시간은 없는지를 확인하게 된다.
○ 부모가 직접 나서라
개학 후 일주일 동안 학습습관을 바로잡지 않으면 중간고사 성적이 큰 폭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2학기 중간고사는 개학 후 한 달여 뒤인 9월 말∼10월 초에 치러지기 때문. 게다가 9월 초엔 가을 운동회, 축제 같은 학교행사가 많다.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다 보면 중간고사가 2주 앞으로 성큼 다가오는 아찔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학습습관을 다잡기 위해선 먼저 생활습관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생활습관 개선엔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개학 후 학생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일을 가장 힘들어한다. 주부 김행선 씨(40·경남 통영시)의 경우를 참조해 보자. 김 씨는 “아이들은 개학 후 사소한 일에도 쉽게 예민해지고 스트레스를 받는다”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생활에 다시 적응하도록 기분을 ‘업(UP)’시켜 주기 위한 방법을 활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딸 조은혜 양(15·경남 통영여중 3)이 기분 좋게 일어나 등교하도록 아침 식탁만큼은 특별하게 차린다. ‘월남 쌈’ ‘참치김밥’처럼 딸이 좋아하는 메뉴로 식단을 짜는 것. 또 학교 쉬는 시간에 친구들과 나눠 먹을 수 있도록 간식을 챙겨주면서 “사랑한다”는 쪽지를 전달하거나 휴대전화로 응원 메시지를 보내는 일도 잊지 않는다. 새로운 마음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책상, 침대, 책장 등 딸의 공부방 안에 놓인 가구를 재배치해 분위기를 확 바꿔주기도 한다.
공부에 집중이 안 된다며 방에서 나오는 딸을 본다면? 30분짜리 만화영화나 TV 음악 프로그램, ‘도전 골든벨’ 같은 퀴즈 프로그램을 보게 한다. 일일 드라마처럼 ‘중독성’ 있는 프로그램은 안 된다.
주부 정송심 씨(40·서울 마포구 아현동)는 개학 전후로 아들 유원철 군(14·서울 월촌중 2)과 봉사활동을 한다. 주말을 이용해 장애아동들에게 공부를 가르치는 봉사를 아들과 함께 하고 돌아오면 아들은 “혼자 공부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면서 시키지 않아도 책상 앞에 앉는다. 정 씨는 유 군이 잠들기 전 10분 동안 침대 머리맡에 앉아 동기 부여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을 읽어주기도 한다.
정 씨는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막 입에서 나오려고 하면 일단 숨을 고른 다음 엄마의 실패담을 이야기해준다”면서 “개학 후 시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힘들었던 엄마의 학창시절 경험은 잔소리보다 더 큰 위력을 발휘한다”고 귀띔했다.
▷C2면에 2학기 중간고사 성적 향상을 위한 ‘개학 직후 일주일 학습법’이 소개됩니다.
<도움말: TMD교육그룹 이정아 수석컨설턴트, 한국외국어대부속외고 김민경 교사>
이혜진 기자 leehj0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