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박모 씨(24)는 지난달 서울 중구 태평로 프라자호텔에서 한 블록 떨어진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까지 택시를 탔다. 시간을 아끼려고 택시를 탔건만 오히려 걷는 것이 더 빠를 뻔했다. 명동 인근 백화점마다 여름 정기 세일 중이었기 때문. 백화점 주차장에 들어가려는 차량 행렬로 시청 앞부터 을지로에 이르는 도로는 모두 마비 상태였다.
시내 교통 혼잡 문제를 완화하기 위해 서울시가 기업체들에 ‘당근’을 제시하고 나섰다. 시는 승용차 이용을 억제하기 위해 녹색 교통활성화 방안에 참여하거나 교통환경개선 및 대중교통 이용자 편의 제공 등의 정책에 동참하는 백화점 등 기업체에 교통유발부담금을 감면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을 추진 중이라고 26일 밝혔다.
○ 규제 대신 참여 유도
교통유발부담금은 교통 정체를 유발하는 1000m²(약 300평) 이상 규모의 시설물(주거 시설 제외)에 물리는 부담금으로 도시 교통개선에 필요한 재원으로 활용된다. 시는 이번 조례 개정을 통해 기존 승용차 부제와 주차장 유료화 정책 등은 현실적으로 조정하는 한편 시설물 종사자뿐 아니라 이용자들도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늘린다는 방침이다. 이에 따라 시설물 용지 안에 자전거 보관소를 설치해 자전거 이용을 격려하는 한편 교통카드를 무료로 충전해 주거나 백화점이나 마트에는 당일 무료 배송 시스템을 마련해 대중교통 이용 고객을 늘린다는 것이 이번 개정안의 핵심. 아울러 주차시설 축소 및 주차유도 시스템 도입, 교통신호체계 개선 등의 프로그램도 새로 추가됐다. 시는 정책에 참여하는 기업들에 대해 프로그램별로 교통유발부담금을 최대 10∼30% 할인해 주고 여러 프로그램에 한꺼번에 참여하면 전액을 감면해 주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이다.
○ 실효성 없다는 비판도
다만 정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 제기된다. 심한 교통 정체를 유발하는 백화점이나 마트들이 고객 편의를 해치면서까지 교통량 감축 활동에는 참여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
정책에 동참 의사를 밝힌 롯데백화점과 롯데호텔 등 롯데계열사도 아직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할지 구체적으로 결정하지 못했다. 주차시설 축소나 무료 주차권 발급 억제 등 승용차에 대한 적극적인 규제는 고객 반발이 예상돼 어렵다는 입장. 롯데 관계자는 “고객 사은 행사로 활용할 수 있는 교통카드 충전 프로그램이나 자전거 보관소 설치 위주로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시는 실질적으로 교통량은 줄이지 못한 채 오히려 백화점 수익 활동만 지원해 주는 꼴이 된다.
사실상 무의미할 정도로 적은 교통유발부담금도 문제로 지적된다. 시가 부담금 과세 대상 시설 8000여 개로부터 연간 걷어 들이는 액수는 800억 원 수준. 시내 요지에 9개 점포를 갖고 있는 백화점도 연간 17억 원 정도만 내면 되기 때문에 사실상 큰 부담은 아니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부담금 감면만으로 현실적으로 교통 문제에 대한 특단의 효과를 기대하기에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시 측은 “이번 정책은 당장 단기적으로 교통량을 줄이기보다는 장기적으로 이용객들 사이에 자전거나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는 의식 변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