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인플루엔자 치료제 타미플루가 최근 ‘귀하신 몸’으로 대접받고 있지만 불과 2년 전만 해도 일본에서 ‘10대 청소년이 먹으면 이상행동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기피대상 약물에 오른 전력이 있다.
1996년 미국 바이오기업 길리어드가 개발한 타미플루는 같은 해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로 독점 제조판매권이 넘어갔다. 먹는 독감치료제로 미국 스위스 캐나다에서 판매된 타미플루는 2000년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국내 판매 허가를 받았다. 2005년 아시아를 강타한 조류 인플루엔자(H5N1)의 유일한 치료제로 알려지면서 세계적으로 각광받게 됐다.
일본은 타미플루의 최대 소비국. 일본에서 판매 허가가 난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전 세계 판매량의 약 70%인 3500만 명분이 팔렸다. 그러나 그해 2월 타미플루 복용 후 투신자살하거나 달리는 트럭에 뛰어들어 사망한 학생들의 사례가 속속 보고 되면서 미성년자 부작용 우려가 커지기 시작했다.
자살까지는 아니더라도 10대 청소년이 복용했을 때 두통, 환각, 불면증이 생길 확률이 30세 이상 성인보다 월등히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일본 정부가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후생노동성은 2006∼2007년 계절 인플루엔자 환자 중 충동적으로 뛰쳐나가거나 고층에서 뛰어내리는 ‘이상행동’을 보인 미성년자 137명을 조사한 결과 82명(60%)이 타미플루를 복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후생성은 올해 6월에도 17세 이하 1만 명을 조사한 뒤 ‘(타미플루와 이상행동의) 연관성을 완전히 부인하기는 어렵다’는 이유로 예외적인 경우 외에는 17세 이하는 복용을 금지토록 원칙을 세웠다. 한국 식약청은 일본의 사례를 참고해 2007년 4월 타미플루 안전성 심사에서 ‘미성년자에게 되도록 사용을 삼갈 것’이라는 조건을 추가했다.
타미플루 복용으로 바이러스 내성이 생기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란이 뜨겁다. 영국 옥스퍼드대 의료 연구진은 21일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의 대다수는 약의 도움 없이도 치료가 가능하다”며 “오히려 예방 목적이나 증상이 경미한데도 약물을 복용하면 바이러스 내성이 생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신종 인플루엔자 환자에게 타미플루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신종 인플루엔자에 걸린 90%는 대부분 저절로 낫는다. 그러나 나머지 10%의 환자는 타미플루를 복용하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된다.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체내에 착상해 증식을 하려고 하는데 타미플루는 바이러스가 자리를 잡는 것을 방해한다. 즉 ‘닻’을 못 내리게 하고 연결고리를 끊어버리는 셈이다. 이 때문에 치료제가 필요 없는 사람들이 남용할 경우 정작 필요한 사람들이 받을 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박승철 신종 인플루엔자 대책위원회 위원장(삼성의료원 감염내과 교수)은 “결국 질병과 싸우는 것은 인간의 면역력이기 때문에 술 담배를 줄이고 과로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타미플루 논란 일지▼
― 1996년 미국 바이오기업 길리어드 개발. 스위스 제약사 로슈 제조판매권 획득
― 1999년 미국 캐나다 등에서 ‘경구용 독감치료제’로 판매 개시
― 2006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이상행동’ 부작용 경고라벨 부착
― 2007년 2월 일본에서 타미플루 복용한 17세 소년이 트럭에 뛰어들어 사망
― 2007년 4월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청, ‘10세 이상 미성년자 원칙적으로 사용 삼가’ 허가 조건 추가
― 2007년 12월 일본 후생노동성 ‘이상행동’ 보고서 발표